본문 바로가기

철학 사상

베이컨의 철학사상

베이컨

베이컨의 철학사상

 

1. 서언

 

베이컨은 1561년 영국 귀족 왕의 도장을 담당하는 관리인 국새 상서를 지닌 아버지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스콜라 철학에 대한 거부감으로 3학년 때 중퇴했다.

그는 프랑스 주재 영국대사관의 수원으로 일하기 위해 파리로 가서 3년간 공무를 수행하면서, 문학과 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부친의 사망으로 고국으로 돌아와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그레이즈 법학원에 변호사나 재판관이 되기 위해 들어갔으며, 21살에 변호사가 되었으며, 23살에 정계 진출하여 하원의원이 되었다.

1607년 그는 검사 차장이 된 후, 검사장, 검찰총장, 추밀원 고문관, 궁정 대신을 거쳐, 1618년 왕에 다음가는 직위인 대법관이 되었다.

 

1621년 뇌물협의로 고소되어 유죄 선고를 받아 파면되어 구금되었으나 왕의 사면으로 풀러 나왔으나 과거의 화려한 관직 생활은 끝이 났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면서, “뉴 아틀란티스를 저술했으며, 그 후, 1626년 겨울에 폐렴에 걸려서 사망했다.

그의 철학 저서는 학문의 진보”, “노붐 오르가눔, 새로운 기관등이 있으며,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훌륭한 수필이었다.

 

2. 철학사상

 

베이컨은 중세 학문을 대표하는 스콜라 철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며, 새로운 철학적 방법을 수립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학문의 목적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학문이란,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역설은 소수의 여유로운 사람들이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당시의 풍토에 대한 단호한 거부였다.

 

실제 생활에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편견과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참된 지식을 방해하는 네 가지 우상은, 1) 종족의 우상으로서 편견, 2) 동굴의 우상으로서 각 개인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편견, 3) 시장의 우상으로서 언어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편견, 4) 극장의 우상으로서 잘못된 논리와 법칙에서 생기는 편견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베이컨은 올바른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하며, 새로운 학문의 방법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귀납법으로서,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칙을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고대와 중세의 학문은 연역법으로서, 이는 면제를 전제로 하여 새로운 것을 추론해 내는 논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기존의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지 못하고 세계를 인간의 사고 속에다 억지로 맞춘다고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의 귀납법은 과학적 지식을 얻어내는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1) 탐구긔 대상이 되는 성질을 가진 사물들의 목록을 작성, 2)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물들의 목록을 작성, 3) 그 성질의 정도에 따라 정렬시킨 목록을 작성하는 세 단계의 목록표를 작성하면, 반드시 드 성질에 대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귀납법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지만, 과학에서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했으며, 그는 지식을 구하기 위한 관찰이나 실험과 같이 강조한 점에서 합리론 철학과의 대비를 통해서 볼 때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며, 대표작은 노붐 오르가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