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철학사상
서언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트리어서 태어났으며, 17살에 183년 본 대학에 들어갔으나, 1년 뒤 베를린 대학으로 옮겼다.
그는 아버지 뜻에 따라 법학부에 들어갔으나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졸업은 예나대학의 철학부에서 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과 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의 차이”이었으며, 대학 졸업과 함께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프로이센 정부는 청년헤겔학파의 위험 사상이라고 배척하여 교수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는 1842년 “라이 신문” 편집진에 들어갔으나 프로이센 정부는 발간 금지 처분을 받게 되자, 1843년 아내와 함께 파리로 갔다.
1844년 파리의 직물 공장주의 아들 엥겔스를 만나서, 그의 망명 생활에 왕성한 연구 활동에 경제적 도움을 받았으면서, 사상적 동반자이자 혁명운동의 동료로서 평생을 같이했다.
1848년 두 사람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으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역사적 문구로 끝을 장식한 이 선언문은 “공산주의 연맹”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출범을 선포하는 문건이 되었다.
1850년대와 1860년대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여, 1867년에 ’자본론‘ 제1권을 발간하고, 제2권과 제3권의 원고로 계속 집필되었으나, 그가 사망한 후 엥겔스에 의해 정리, 출간되었다.
2. 철학사상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을 ”노동하는 인간“으로 파악하여, 인간이 노동하는 행위는 삶에 필요한 자연적인 것을, 인간에게 필요에 맞도록 만들기 위한 합목적 활동이라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은 진정한 노동이 되지 못하고 ”소외된 노동“으로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만 낳는다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어떻게 소외되는지 노동의 단계를 설명했다.
1) 노동자는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 자신 것이 되지 못하고 자본가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이다.
2) 노동자는 그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인간은 생산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노동을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3)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4) 생산물과 생산활동으로서 노동,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간이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동과 소외의 문제는 그의 철학에서 이미 등장한 것이며, 그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집약된다.
1. 변증법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은 변증법철학과 유물론 철학을 결합한 것으로서, 세계의 운동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하여 세계의 변화 발전 과정을 적용하여 세계의 변화 발전 과정은 물질에 기초하면서, 변증법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 가지 법칙은, 1) 양에서 질로의 진화법칙이다.
예로는 물이 얼음이나 수증기로 변화하는 것은, 물에 대한 열의 양적인 작용이 특정 시점에 이르게 되면 질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2) 대립물 상호 침투와 통일의 법칙이다.
예로는 자연에는 음과 양, 작용과 반작용 같이 대립하는 요소들이 존재하며, 서로 대립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어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3) 부정의 부정 법칙이다.
예로는 밀알이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싹을 틔우고, 그 싹은 다시 자기를 부정하며 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은 단지 자연현상이나 하나의 세계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이나 인식론, 방법론 및 실천의 문제 등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라고 했다.
2. 사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은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의 변화 원리에 관한 설명한 것으로서, 사회생활의 기초는 물질이라고 하면서, 생산량식이 사회생활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생산양식은 인간이 생산활동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생산에 필요한 힘으로써, 자연력이나 전기, 각종 도구로서 생산력이다.
그러나 인간은 집단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데 참여하는 집단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데 참여하는 집단적인 형태의 생산관계가 있어야 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특정한 생산양식을 역사적으로 볼 때,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봉건제, 근대 자본 제를 네 단계를 거쳐 왔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생산양식이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전환한 것은,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체제에서 착취당하는 계급의 투쟁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착취받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투쟁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할 수 있으며, 이로써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 계급이 없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는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이라고 주장하며, “인류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사저 유물론은 유물론에 토대를 두고 역사 발전을 설명했기 때문에 “유물사관”이라고 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19세기에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이론을 체계화했지만, 사회주의 세계의 실현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