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사상
실용주의 철학자 듀이는 1859년 미국 동북부의 위치한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태어나서, 1875년 버몬트 대학에 입학하여 그리스어, 라틴어, 수학, 지리학,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국제법, 철학 등 공부했다.
듀이의 영향을 끼친 것은, 대학 생활 동안 다윈의 진화론과 콩트의 실용주의였으며, 1879년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중학교와 초등학교 교사 생활하면서, 철학에 심취하여 고전을 광범위하게 읽었다.
그는 철학에 몰입하면서, “사변 철학 잡지”에 두 편의 철학 논문을 기고 하여 호평을 받게 되자 일생을 철학 연구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1882년 존스 홉킨스 대학의 대학원에 들어가서 모리스 교수의 영향으로 헤겔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1884년 “칸트의 심리학”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간 대학의 철학 강사로 취임했다.
1894년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 교육학을 합친 학부의 학장으로 취임하여 1904년까지 재직했다.
1905년 컬럼비아 대학의 초빙으로 1930년까지 재직하면서, 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사회비평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으며, 1952년 92살에 사망했다.
그는 50권의 저서와 750여 편의 논문과 저서로 “학교와 사회”, “윤리학”, “민주주의 와 교육”, “확실성의 탐구”, “논리학-탐구의 논리” 등이 있다.
2. 철학사상
듀이는 미국 실용주의의 전통과 발전에 기여를 한 것은, 미국의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 때문이었다.
듀이의 도구적 실용주의는 현재 인간사회는 자연계와 사회환경 속에서 항상 위험한 상태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이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온하게 생활하기 위한 도구로서 발견한 것이 기술이라고 했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연과 사회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에 관한 습득은 지식이라고 했으며, 이러한 지식은 일상생활의 방편이며 도구라고 했다.
인간의 사고는 새롭게 닥쳐오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그는 인간의 사고, 지식, 사상이란, 자연적인 혹은 사회적인 환경에서 비롯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구가 되므로, 그는 실용주의를 “도구주의”라고 불렸다.
그는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진리가 없으며, 진리를 탐구하는 전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탐구 과정은 문제의 발견, 문제의 설정, 가설의 발견, 사실의 발견, 사실의 검토, 문제의 해결하는 진리의 탐구 과정을 다섯 단계라고 구분했다.
그는 수단을 중시하는 윤리관과 교육관은 보면, 윤리학에서 절대적인 선이나 악의는 없으며, 그는 수단을 중시하여 절대적인 목적은 인간의 외부 세계에서 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가치론은 도구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가 끊임없이 진보의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교육 분야에서 진보적인 교육을 주장하며, 교육이란, 사회생활의 그 자체로서, 학교와 사회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인간의 생활과 사회를 개선하고 재조직하는 교육 경험을 통해서 더욱 완벽하게 나아가야 할 이상 또는 목표로 생각했으며, 그는 중단없는 사회개혁을 추구했고, 철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 분야에서 진보적인 교육을 주장했으며, 교육이란, 사회생활 그 자체라고 하면서, 학교와 사회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학교 교육은 사회생활의 일부로서 학교생활 자체가 경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학교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란, 끊임없이 인간의 생활과 사회를 개선하고 재조직하는 교육 경험을 통해서 더욱 완벽하게 나아가야 할 이상 또는 목표로 생각했다.
결국, 듀이는 중단 없는 사회개혁을 추구했으며, 철학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