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잘린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출신인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으나, 사후에는 그의 그림인 해바라기(Sunflowers)는 100년이 지난 뒤에 580 역원으로 작품이 엄청난 가격으로 팔렸다.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쥔더르트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개신교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좌절한 후에 20대 후반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아버지의 친구에게 상담받으러 갔으나 그 집의 손녀딸이 그의 모습을 보고 기절할 정도로 불결하게 몸을 관리를 했다.
그는 애를 쓰도 그림이 팔리지 않아 화구상이 된 동생에게 의지해 생활비를 얻어서 지냈으며, 모델료나 그림 도구를 사는 많은 돈이 소요되어 먹지도 못하고 공복에 담배만 피우는 생활로 인하여 건강상태가 좋지가 않았다.
그는 화가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의 그림은 선명한 빛깔을 좋아했으며, 노란색이나 오렌지색 색채를 아로새기는 화풍으로 불꽃처럼 격렬하여 “불꽃의 화가”라 불렸으며, 광기가 있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1888년 2월 22일 그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로 가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자 여행을 하였으며, 여기서 그는 폴 고갱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고갱을 존경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해바라기”는 사랑과 인연을 갈구하는 그의 애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으며, 그는 고갱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 가치관이 달라서 마치 물과 불처럼 서로 전혀 맞지 않았다.
1888년 12월 고흐는 형님 같이 존경하는 고갱이 크리스마스 오기 전에 떠난다고 하자 버림받고 예술가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꿈이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서 평소 잘 아는 매춘부에게 건네주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 사이에 매춘부를 사이에 두고 모종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오늘까지 고흐의 귀 절단 사건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고갱은 자신과 말다툼을 한 뒤에 고흐가 스스로 자기 방으로 가서 귀를 잘랐다고 하지만, 새로운 의문은 고갱과 고흐와의 격렬하게 다투던 중에 위협할 의도로 꺼내 휘두르다가 실수로 고흐의 귀를 잘라버렸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리 고흐가 제정신이 아니어도 자신의 귀를 잘라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진실은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이 사건으로 고흐는 자신의 광기를 인정하고 아를에서 그리 멀지 않는 생레미의 생 폴 요양원에 입원을 했으며, 그가 그림을 그리다가 돌연 자살 욕구가 높아질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귀 절단 사건으로 약 2년 후, 1890년 7월 29일 밀밭에서 죽음이 두려워 머리나 심장을 쏘지 못하고 하복부를 권총으로 쏘아서 36시간을 괴로워하다가 사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