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본능적인 사랑
파블로 피카소는 성적 욕망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예술의 혼을 불태운 천재의 화가로서, 스페인이 낳은 천재 중의 천재화가로서 “청색시대” “장미시대”의 여러 작품으로 평판과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화가이었다.
피카소의 화풍은 많은 화풍을 달리하면서 예외 없이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서 그림의 배경은 언제나 생동감이 있었다.
피카소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인은 첫 번째 아내인 올가 코클로바 이었으며,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의 피를 물려받았다.
결혼당시 피카소는 37살이며, 올가는 27살로서 10살의 나이차이가 났으며, 결혼 무렵의 피카소는 신고전주의 화풍이었으며, 올가는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었다.
올가는 피카소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가치관의 영향을 끼쳤으며, 그림에서도 안정감을 주었으나, 피카소의 내면에는 억누르기 힘든 “야수의 피”가 솟구쳐 흐르고 있어, 결국, 두 사람은 파국을 맞이하였다.
피카소의 파국의 원인은, 그녀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했으며, 애정 어린 간섭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억제하는 족쇄처럼 느낀 것이었다.
피카소는 중년의 나이가 된 1927년 1월 8일 46살에 소녀 17살의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앞 지하철 출구 계단에서 처음 만났을 때, 계단을 오르는 소녀에게 손목을 잡고 말했다.
얼굴이 흥미로우니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며, 자신을 피카소라고 소개하였으나, 소녀는 피카소의 명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이어도 왠지 소녀는 피카소에 대한 마음이 끌리었다.
테러즈는 피카소의 예술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흥미도 없었으나 훗날 두 사람의 본능적인 육체적 사랑의 욕망을 채우면서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피카소는 테레즈의 임신을 빌미로 오가에게 이혼을 제기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1955년 사망할 때까지 피카소의 아내의 자리를 지켰다.
그 후 테레즈가 출산 후, 마음이 갑자기 변하여 1936년 어느 카페에서 도라 마르라는 여자 29살이며 피카소는 55살 나이로 뜨거운 사랑을 하였다.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 도라 마르를 “항상 우는 여자”로 묘사했으며, 항상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을 묘사하였다.
피카소는 62살의 황혼의 나이에 22살이 젊은 여인 프랑수아즈 질로를 1943년 만나 한 눈에 반해서 그녀를 유혹하여 사귀었으며 피카소는 전 세계적인 명성의 천재 화가이었다.
그녀를 유혹한 동기는 대학을 중퇴한 그녀에게 매료된 피카소는 그녀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러 자주 방문하라고 말하며 은근히 유혹했으나, 노화가의 애정공세에 망설이다가 결국 유혹의 밤을 보내며 본능적인 욕망의 육체적인 사랑을 하였다.
몇 년 동안 사귀다가 매정하게 버리면서, 그녀는 피카소를 버린 우일한 여자로 역사로 남기게 되었으며, 피카소는 그녀를 못 잊은 듯이 “우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재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