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히틀러의 연인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연인이 있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연유는 그는 사생활에서 자신의 일생에서 없다며 평생을 독신을 고수하였다.
이는 나치스의 공식 의견으로서 카리스마적 독재 지도자에 대한 상징성을 배가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실제로 그에게는 에바 브라운이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1910년 10월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시작은 뮌헨의 호프만이라는 사진관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브라운의 미모에 현혹된 그는 가명으로 접근을 하였으나, 브라운은 단박에 정체를 눈치를 채고 호감을 가졌다.
그는 사진관을 방문할 적마다 브라운에게 꽃다발을 주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되기까지는 나이 차이가 23살이나 차이가 나서 이성적인 연인으로서 만나는 것보다 부녀 관계와 같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연인으로 생각하며 접근하였으나, 외부로는 철저하게 브라운의 존재를 숨겼으며,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숨기는 것은 자신에 대한 독점욕 때문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하며, 자신의 연인이 신문이나 라디오에 절대 권력자의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기쁨을 느꼈다.
주로 외부의 다른 사람 몰래 대낮에 만나는 연인관계는 깨끗한 관계로 이어졌으나 그녀는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집착을 했다.
그녀의 끈기 있는 열정으로 유혹을 했으나, 그는 우회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다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눈치를 채지 못했으며, 전용 전화기가 설치된 후에도 애타게 기다렸으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1932년 그녀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한 권총 자살극을 부린 사건이 있은 후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은 한 층 깊어졌다.
그 후 1935년 그녀는 수면제로 자살미수사건이 있었든 것은, 그의 일상은 너무 바빠 그녀를 보살펴줄 시간이 없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살 미수사건 이후 3개월 동안에 일기로 기록을 남긴 것이 오늘까지 보존된다고 한다.
“독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그의 유일한 애인은 자신이라고 했으며, 어떠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자신이 필요로 한다.”라고 폭로성 문장이었다.
1945년 4월 28일 소련군의 폭격소리가 지하 방공호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가운데 히틀러의 철옹성 같은 마음이 흔들려 브라운과의 결혼을 승인한 것이었다.
결혼식은 29일 한밤중에 시작되면서, 그는 나치스 제복에 훈장을 달았으며, 그녀는 옅은 파란색으로 물들인 드레스에 모피 케이프를 걸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치스가 정한 관습에 따라 결혼선서로 신랑 신부를 향한 질문을 “아리아 민족의 피를 잇고 있는가?, 유전 직함은 없는가?” 등 두 사람이 동의하자 예식은 10분도 안되게 간소한 결혼식은 끝났다.
두 사람의 결혼 축하연은 홍차와 삼페인이 나왔으나 히틀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자리를 떠남으로서, 두 사람이 부부로 지낸 시간을 36시간이 전부이었다.
4월 30일 오후 1시 히틀러는 브라운과 최후의 점심을 먹었으며, 브라운은 히틀러가 특히 좋아하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두 사람은 침실로 들어가 브라운은 시안화합물이 든 캡슐을 삼키고 히틀러는 권총 자살을 하자, 화장을 하여 두 사람의 사체는 한 줌의 재로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