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토피아(Utopia)(플라톤 국가 중심으로)
-고대 유토피아(Utopia)는 플라톤의 국가(The Republic) 중심으로-
고대 철학이나 정치사상에서 그리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들이 많았다.
고대 유토피아의 설명에서 플라톤의 “국가” 중심으로 보면, 다양한 형태의 유토피아를 신화적 사회와 이상 국가를 묘사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국가를 이상적인 미래 도시 국가의 토대를 하였으며, 법은 차선의 국가로 설명을 하였다.
고대 유토피아의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은 플라톤의 “국가”와 플루타르코스의 “리쿠르고스”의 생애였다.
이러한 저작은 고대 그리스 사상의 권위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경향을 대표하였으며,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개량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나 자유지상주의 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이상에 의해 완화된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특히, 플라톤의 “국가”는 아테네의 정치적, 경제적, 쇠잔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자, 그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아테네의 패배와 스파르타의 승리를 교훈을 삼으려고 하였다.
그는 이상적인 도시를 구상할 때, 스파르타를 하나의 모델로 하여 권위주의적인 원칙에 토대를 둔 강력하고 동질적인 국가의 개념으로 대치시켰다.
그의 이상 국가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이상적인 통치계급에 대한 묘사에 가까우며, 평민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입법은 철학자들이 하여야 할 일로 서술하였다.
그의 “국가”에서 생산자 계급의 삶에 대한 규율은 없으며, 사유재산의 폐지되지 않고, 일부일처제와 가족생활이 그대로 존속을 허용하는 등의 암시적으로만 되어 있었다.
그가 제시한 “국가”는 모든 음악, 문학, 건축, 그림이 특정한 윤리적 기준에 순응하여야 하며, 예술은 개인의 개성 표현이기를 중단하고, 국가의 이익에만 기여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선과 악이 무엇이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무엇인지는 국가가 결정한다고 하였다.
그는 예술과 윤리 사이의 관계, 즉, 예술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진리와 아름다움을 옹호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자유로운 예술의 전복적인 영향으로 국가의 안정을 보존하기로 원하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은 국가의 위험한 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견해에 익숙하였으며, 예술작품이 부르주아적 퇴폐의 표출로 간주되어 파괴되거나 발표가 금지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시대에는 책도 출판도 할 수 없으므로, 가르침이나 예술작품을 통해서만,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국가”에서 각자의 관념이 시민들을 생산자 집단, 군인 집단, 통치자 집단으로 인위적으로 구분하지만, 이는 가장 기초적인 심리학적 관찰과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오늘날 인간의 본성상 어떤 사람들은 통치하기 위해 태어나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통치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시대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역사과정에서 볼 때, 공동체 일은 그 구성원 모두에 의해 수행되는 가운데서 번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철학자들에 의하여 통치를 크게 신뢰를 받은 플라톤을 조롱한 에라스뮈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