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교정되고 보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학은 인류 최초의 과학자에 의하여 저술된 문예 비평에 관한 최초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후세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시학은 시의 본질과 작사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이었다.
그의 시학의 내용은 비극과 희극은 어디서 유래되었는가, 플롯과 성격 가운데 어느 것을 우위에 놓는가, 단일한 결말을 가진 플롯(구성)과 이중의 결말을 가진 플롯 중에서 어느 것이 훌륭한가, 비극은 어떻게 결말을 짓는 것이 좋은가 등에 관한 여러 가지의 견해를 언급하였다.
특히, 문체와 문법에 관한 부분에서는 수사학에 관한 여러 저술과 소피스트들, 프로타고라스의 언어에 관한 고찰을 상당히 참고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는 서사시와 비극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인가를 다르면서, 자신의 견해와 상반된 플라톤의 견해를 비교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시학의 배경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취급하게 된 계기는 플라톤의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시를 공격하는 하나의 이유는, 시는 사람의 자제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고삐를 풀어 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시들어지게 해야 할 것들에 물을 주는 역할로서 감정을 제거해야 할 잡초와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그가 시학을 쓴 목적은 당시의 비극 경연과 관련해서 작시 술에 대한 실용적인 기술적으로 교시를 주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은 후세에 와서는, 시는 천재 또는 영감에 의하여 쓰여지는가, 아니면 숙련이나 작업에 의하여 쓰여지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다고 했었다.
그는 시는 표현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 통일을 이루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로서의 의미는 시인은 플라톤이 말하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라고 했었다.
그는 비극의 목적은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의 문학에 심미적 가치를 부여한 최초의 문예 비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비극의 구성요소를 비극의 제1원리로서,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라고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비극을 관람하거나 책을 읽을 때의 흥미로 등장인물의 성격에 집중되며, 작품에서는 플롯의 구성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콤플렉스인 것이다.
이와 같이 플롯이 제일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은 이해가 가지 않고 비지성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 예술로서, 성격 묘사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플롯 없이 드라마가 될 수 없으므로 플롯은 비극에 필요불가결의 요소인 것이다.
결국, 그의 이론은 그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에서 귀납적인 방법으로 추출해 낸 것이며, 수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읽고 난 뒤에 주인공의 인간상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의 시학의 내용상으로는 시학이라기보다는 드라마 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만큼 거의 드라마에 한해서 논하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결전이 된다.
다른 하나는 시학의 결점은 드라마의 역사적 발전에 관하여 언급한 최초의 저술가였지만, 종교적 기원에 역점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교리적인 사고방식의 제한된 시야로 인하여 이론이 온당하지 않거나 혼란하여도 서양문예 비평사에 시학만큼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준책은 없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