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사상

신은 곧 자연(우주)이다.

신은 곧 자연(우주)이다.

스피노자

신은 곧 자연이고 자연은 곧 신이다,라고 말한 탈근대 철학자는 스피노자이었으며,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포르투갈 계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유태인 목사로 키워졌다.

그는 네덜란드, 학자인 반 덴 엔데로부터 라틴어를 배우면서 스승의 딸을 사랑했으나 이루지 못하자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교회가 인간들을 사랑하지 않고 초월한 신만을 사랑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으며, 그의 “신은 곧 자연(우주)이라는 말에는 자연 대상들 사이에 사랑 속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는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체를 서로 독립된 실체로 보았지만, 정신과 물체는 신의 두 가지 속성일 뿐 하나의 실체라고 했으며, 여기서 실체는 곧 신이며, 자연(우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고 했다.

 

그는 철저한 범신론의 입장이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신에 의한 자연 창조를 부정하고,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신에 속해 있어, 신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벌을 내리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실체는 자연이며 자연은 신으로서, 많은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중에서 연장과 사유는 인간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이며 나머지 영역은 인간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신과 육체는 별개가 아닌 하나의 실체이며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합일시키려는 어떤 상태를 지속하려는 힘이며 자기 보존의 원리인 코나투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몸은 피가 나면 자연적으로 응고시켜 피가 나지 않도록 하고 세포를 재생시키는 이러한 성격의 힘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신과 육체를 합일시키는 지속하는 힘은 정신의 성격과 물질의 성격을 모두 지니며, 지속하는 힘이 정신과 관련되면 의지라 불리고, 육체와 정신이 모두 관련되면, 욕망이라고 부르며, 정신적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변화하며 반대로 육체가 정신의 상태에 맞춰 변화기도 한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기쁨은 정신이 지속하는 힘과 같은 방향으로 작용해서 자기 보존 욕망이 실현되어서 자기가 더 커질 때 나타나며, 반면에 슬픔은 정신이 지속하려는 힘과 대립해 자기 보존 욕망에 반대되어 자기가 이전보다 더 작아질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는 자연은 외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자연은 생산적인 힘으로 가득하며, 신은 인간이 생산하는 생산력이기에 인간은 신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연유는 자연자체가 신이라면, 자연 안에 있는 인간은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며, 신의 일부인 인간의 생산력은 곧 신의 생산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예속과 복종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나오며, 인간은 모든 예속과 복종에서 탈출해 매사 긍정적이고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으며,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했다.

 

그는 영원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부정이며, 영원성이란 죽음 후의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삶의 그 자체이며, 모든 인간의 개인은 시간을 초월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연유는 인간은 자연과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며, 자연과 신은 소멸되지 않으므로 인간은 신의 영원한 부분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에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어 인간은 모든 동물 가운데 자신이 가장 진화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슬픔과 기쁨, 욕망 등의 감정이 자연 혹은 우주의 질서에 따른 것임을 인식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여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때, 인간은 질투와 분노, 탐욕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다양한 욕망의 지배를 받으므로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각종 종속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며, 전통 윤리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육체가 빚어내는 온갖 욕망이나 감정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지만, 감정이나 욕망은 이성에 의해 무턱대고 억누르려고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감정이나 욕망을 무시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욕망이나 감정은 현실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므로 이성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현실에서 무력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는 어떤 이성도 통하지 않으므로 감정과 욕망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윤리 철학자들과 변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 개인이 어떤 나쁜 욕망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에 전통적인 윤리학의 관점에서는 이 욕망을 이성에 의해 억눌러야만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