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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사회주의 국가의 이념형성과 몰락

사회주의 국가의 이념형성과 몰락

1. 러시아의 사회주의 형성

레닌과 스탈린

 

세계 제1차 대전 후에 많은 국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에 영향을 미치게 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의 붕괴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경제적, 사회적으로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져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시작할 무렵부터 철강생산과 석유생산으로 세계 총생산량의 절반이 차지하면서, 대국이 되었으나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농노 해방령”을 내리고 근대화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러시아는 사회기반시설 정비에 사용하는 자재와 산업 진흥에 필요한 기계수입에 필요한 비용마련을 위해 곡물을 수출하자 국민들은 빈곤해지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세금부과와 국가의 농노경작으로 인한 국민들은 정치 불신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러일전쟁으로 생활고에 시달린 국민들은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나자 황제의 친위대가 민중을 향해 발포하여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후 제1차 러시아 혁명으로 반정부 폭동이 일어났다.

이후에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 되면서, 노동자들은 시위와 폭동을 일으켜 자본가에게 평등한 분배를 요구하였으며, 병사들도 폭동에 가담하여 무기까지 공급하였다.

 

이런 연유로 제2차 러시아 혁명인 2월 혁명으로 러시아의 황제 독제 체제라는 긴 역사는 무너졌으며, 황제 독재 하에서 불만을 품었던 정치세력이 결집해서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정권을 잡았다.

빵과 평화를 원하는 민중의 기대는 사회주의 제창한 정당인 볼셰비키를 이끄는 레닌에게 집중되자 레닌은 민중의 사회인 소비에트에 권력을 집중시켜 전쟁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며 무력항쟁에 나섰다.

내부가 분열되어 불안정한 임시정부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된 것이 10월 혁명이었다.

레닌은 신경제정책이라는 자본주의 경제를 일시적으로 시행하면서, 기업이 외국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농산물을 판매하도록 하여 자유롭게 돈을 벌도록 하였다.

 

레닌은 표면상으로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내걸면서도 개혁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방침을 전환하여 사람들이 근로 의욕을 회복시키자 자본주의가 부활하면서 부유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레닌이 사망을 하자 소련의 실권을 잡은 스탈린은 신경제정책을 부정하고 소련에 본격적인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중공업을 진흥시키고 농민에게 국유지를 할당하여 “평등한 분배”를 실현하였다.

 

2. 세계국가의 사회주의 몰락

 

세계의 오일 쇼크 등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이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경쟁을 하지 않게 되자 품질과 기능이 향상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사산업에 생산력을 투입하자 민간은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낮은 생활수준이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계급과 격차를 부정하고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정치적 지위에 따라 권한과 부수입이 남용되어 분배에 격차를 가져와서 실제로는 계급사회가 되어 사회주의는 실질적으로 내부로부터 붕괴가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헝가리 정부가 동쪽 지역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가고,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서독으로 입국했으며, 동독 국민들은 서독으로 망명방식으로 국민이 이동하였다.

 

결국, 동독 국민들은 서독으로 대거 몰려가서 베를린의 동서독 장벽이 무너져서 개방되었으며,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소련에서도 공산당 서기장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취임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는 페레스트로이카(재건, 재편)와 글라스노스트(정보 공개)로 강력한 개혁정책을 단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