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욕망의 이름으로
8월의 무더운 여름밤!
원미동 마을은 한낮 태양의 열기로 건물이 가마솥에 감자 삶듯 들볶아 된다.
성냥갑처럼 좁은 방구석에 있던 혜린은 찜질방에서 물빨래하듯이 땀을 흘린다.
벽에 걸린 벽시계의 크고 작은 시침과 분침은 밤 12시를 가리키며 서로 짝짓기를 한다.
무더운 여름날 동물적 욕정을 풀고 싶은 감정에 몰입하다가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은 생각에 연립 옥상으로 올라간다.
옥상 바닥에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파란 여름밤의 하늘을 향해 벌렁 몸을 누워버린다.
밤하늘은 온통 푸른 강물이 되어 수많은 별들을 품고 아름다운 빛을 토해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중천에 솟은 상현달은 건물 귀퉁이를 돌아 줄넘기하듯이 넘어가고 불어오는 실바람은 흐느적거리며 혜린의 통치마를 들치려고 기를 쓴다.
하얀 다리사이 깊은 계곡의 숲을 찾아 숨어들자 기분이 좋아진 혜린은 긴 다리를 뻗쳐서 둥근 알궁둥이를 하늘 찌르듯 V자로 흔들어 된다.
실바람에 벗겨진 다리 사이로 불룩 솟은 도톰한 음부의 언덕을 내려다보며 기분이 좋아지자 입고 있던 상의마저 걷어 올린다.
두 개의 젖무덤이 하늘 향해 달빛에 하얗게 탱탱하게 불룩불룩 솟아오르고 두 개의 검은 젖꼭지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여름밤의 수많은 작은 별무리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고, 서쪽 산으로 기우는 상현달조차 반쪽 얼굴로 웃음을 머금는다.
어디론가 흐르는 흰 구름 따라 가고 싶은 마음 달랠 길 없어 가쁜 숨 몰아쉬며 불판 위의 잘 익은 생고기처럼 욕정의 늪 속을 빠져들어 간다.
생각과 동작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고개를 처 드니 저 멀리 삼태기 모양으로 윈미산이 언뜻언뜻 보인다.
곰실거리며 밀러오는 윈 미산 계곡 바람은 부지불식간에 혜린의 온몸을 욕정으로 불태우자 불그무레한 얼굴은 옥상 난간 너머 이층 연립 집을 남실거리게 한다.
창문이 열린 사이로 화장대 거울에 비친 큰 침대 위에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젊고 싱싱한 남녀가 서로 엉켜 붙어 동물처럼 곤두박질치고 있다.
욕정으로 질벅질벅 불태워 아름다운 음률을 내며 훨훨 춤을 추면서 널뛰기하는 모습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몰래보고 있는 혜린은 점입가경에 빠져들어 간다.
들리는 바람소리는 강물 흐르는 소리가 되어 아름다운 여름밤의 시간을 잡아 삼키며 어디론가 흐른다.
서쪽 하늘 끝자락을 상현달이 잡을 때까지 거울 속의 젊은 남자는 침대 위에서 달리는 말고삐를 잡고 질풍처럼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연인들이 하나의 예술품처럼 허물을 벗자 하얀 젖무덤과 둥근 엉덩이를 보이는 여자와 검은 건육 질 남자는 한 덩어리가 되어 춤을 추는 모습이 앙증맞게 보인다.
욕정을 참다못한 혜린은 삭신이 쑤시자 벽돌 난간 구멍 사이로 눈을 바짝 붙이고 다급하게 옆집에 열린 창문 사이를 드려다 본다.
실낱 별빛이 숨어드는 좁은 방벽에 붙어있는 알몸의 물구나무 선 젊은 남자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 가관이다.
탄탄한 두 팔 기둥으로 벽에 붙어 물구나무 선 남자로부터 풍기는 싱싱한 풋과일 냄새가 살포시 건너와 가슴 속 깊이 안기자 마음이 느즈러진다.
몸 깊은 아랫도리 샘 속에서 쏟아지는 욕정의 씨앗을 받아 혜린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잔별들의 파란강물 속으로 욕망의 이름으로 씨앗을 뿌린다.
여름 낮 간간이 쏟아진 소낙비로 아스팔트길은 혜린의 마음속까지 시원스럽게 쓸어 가버린다.
짧은 치마를 바람결에 나붓거리며, 티셔츠 차림으로 원미동 사거리 있는 푸른 넷 P.C방으로 어기죽거리며 걸어간다.
바닷속의 바위 위에 게딱지처럼 달라붙은 연립주택의 비좁은 고샅길을 돌아 언덕 아래 사거리의 하얀 빌딩으로 조르르 들어간다.
P.C방에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하루 몇 만 원씩 받고 아르바이트로 일을 한다.
건물 지하 1층 70평 규모에 독서실처럼 좌석이 배열되어 있어 지정된 자리에 앉으면 옆 칸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도록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언제나 P.C방 입구 계산대에서 시간당 돈을 계산하여 받기만하는 간단하고 하잘 것 없는 단순한 일을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단 아래 P.C방에 들어서니 주인 여자는 이미 돈 계산을 끝내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시답지 않게 인사한 혜린은 계산대에 털썩 주저앉아 벽시계를 쳐다보니 아직도 10시가 안되었고, 벽에 붙은 선풍기만 요란한 소리를 내고 돌아간다.
실내를 휘둘러보니 낮부터 비가 온 탓인지 사람들은 없고 구석진 좌석엔 남녀가 엉겨 붙어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알 수 없고 겨우 머리꼭지만 보인다.
새벽에 남자 주인한테 돈만 계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머리를 계산대에 붙이며 흘러간 시간을 생각해본다.
결혼 20년이 지난 4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밤과 낮이 뒤바뀐 판박이 생활이 짜증이 나도록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밤마다 밀려오는 외로움과 생활의 경제적 고통에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강할수록 생활의 수단과 방법은 잠재적 동물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양식만 축내며 놀고만 있는 수컷개미보다 일만 하도록 운명적으로 태어난 일개미의 암컷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복합한 여러 가지 생각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혼자 집에서 잠을 자야 하는 딸아이 얼굴 모습으로 가득 찼다.
밤늦도록 혼자 놀다가 잠이 드는 딸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방에서 직장 때문에 안동에서 고생하는 남편 얼굴이 겹치기로 떠올렸다.
자포자기 생활에서도 한때나마 사랑했던 남편 모습을 지우기 위해 재빨리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켜자 파란 화면이 소리치며 뜬다.
마우스를 급히 움직여 삐죽한 화살 표시로 구석구석 헤집고 다녀도 눈사태처럼 밀리는 잠 때문에 두 눈꺼풀조차 뜰 힘이 없다.
그만 계산대 탁자위에 엎드려 두 눈을 감아 버리자 젊은 남녀의 본능적인 사랑이 아름다운 꿈의 세계로 풍선처럼 날아들어 온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혜린은 누군가 자신을 계속 부르고 있다는 소리를 아슴푸레 들리자 간신히 고개를 쳐들며 눈을 뻔쩍 뜨며 부풀 부풀 일어선다.
자신을 부르며 깨우고 있는 사람이 주인아저씨라는 생각에 얼굴에 흘린 침을 손으로 문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엎드린 탁자에 흘린 침이 얼룩져있고, 갈기갈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기며 성품이 유덕한 사장에게 돈을 인계하고 건물 밖으로 나온다.
무르녹은 달콤한 꿈속에서 사랑의 샘물이 속옷을 적셨다는 느낌이 들자, 혼자만의 사랑의 찌꺼기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본다.
건물 밖의 원미동 사거리는 이른 시간인지 썰렁한 바람만이 흩어진 쓰레기 부스러기를 몰아가고, 원미산 자락 끝에는 겨우 남은 조각구름을 실 빛이 조금씩 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