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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술

사랑과 욕망 (2. 미늘 )

2. 미늘

초겨울은 늦가을 끝자락 잡고 유별나게 버둥거리고 있는 오후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안동으로 향하여 달리는 열차에 혜린은 딸과 함께 타고 있다.

창가에 앉은 혜린은 창밖에 문득문득 지나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다본다.

붉게 물들며 겹겹이 접어 세운 높고 낮은

산과 들!

크고 작은 나무와 풀숲!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는 샛강!

하얀 맑은 물!

송곳처럼 삐죽삐죽 솟은 바위!

푹! 찌르면 바가지 물을 쏟아부을 것 같은 파란 하늘!

스치며 지나가는 가을걷이가 끝난 허전한

들판!

논밭 여기저기 보이는 각담!

논물 속에 목만 내민 새까만 벼 그루터기!

눈으로 보이는 이 모든 것들 정겹기만 하다.

한 달에 매번 집에 오던 남편 태평은 올여름부터는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자 궁금한 나머지 걱정이 되어 안동으로 가는 중이다.

처음엔 남편 직장인 안동에서 살았지만 딸 교육 핑계로 원미동에서 딸만 둘이서 산다.

언제나 귀찮을 정도로 발발이 전화하며 집 걱정하던 남편이 일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감감하여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안해서 딸과 함께 찾아 나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친 혜린은 남편에 대한 오기가 생기자 기대와 희망은 사라지고 감정은 절망과 원망으로 침몰되어 간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십 년 연상인 마태 평을 만난 20년 전 생각으로 몰입되어 가면서 꿈같이 흘려버린 세월을 되새김질하듯 곱씹듯이 생각한다.

봄바람에 하늘 멀리 구름 흘러가듯 혜린은 고향을 떠나 머문 곳은 성남시 상대원동!

상대원동은 서울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민 이주대책으로 산을 깎아 급히 인위적으로 조잡하게 조성한 신개발 중소도시인 성남시였다.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정착 딱지를 받아 이주한 이곳은 마치 조그만 천으로 덕지덕지 기워 만들어진 옷처럼 된 땅이었다.

서울 변두리 지역 공장들이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상대원동으로 이주시켜 하나의 공업단지를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서민층이 군데군데 모여 살았다.

하루살이 막노동을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도시가 되었다.

상대원동 버스종점 정류소에서 내린 혜린은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갔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집어내어 공중전화 박스에 넣고 숫자판에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하나씩 숫자를 찍었다.

수화기 속에서 신호 가는 소리가 길게 들리다가 끊어지며, 연꽃잎에 물방울 굴러가는 듯 아름다운 지숙의 음성이 들렸다.

수화기에 키스하듯 입술을 바짝 붙이고 황급히 혜린은 반기듯 상대원동에 왔다는 말을 했다.

전화를 끝낸 혜린은 너무나 반기며 지숙이가 알려준 사거리 길 건너편 종점 다방에서 퇴근시간이 되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성남시가 국가의 이주정책으로 공장들이 들어서며 번창해지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지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언니 집에서 살며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교환수로 취직했다.

명절 때마다 지숙은 고향 행곡에 다녀와 도시생활을 예기할 적마다 혜린은 도시가 동경과 갈망의 대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같은 마을 진구 오빠가 군에 제대하자마자 공부하러 간다고 서울로 떠나가자 텅 빈 마음 무엇이라도 채울 수가 없어 날밤을 지새우곤 했다.

막상 고향을 떠나 꺼무죽죽한 다방 구석자리에서 지숙을 기다리는데, 마음속으로는 앞으로 다가 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녁 6시 조금 지나자 다방 문이 열리면서 긴 생머리를 풀렁거리며 지숙이가 들어섰다.

가무숙숙한 얼굴로 혜린 앞으로 오고 있는 지숙은 혜린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서 흔들어 보였다.

눈매가 서글서글한 지숙은 찰옥수수보다 고른 하얀 이빨을 보이며 혜린을 향해 걸어와 촐싹거리며 앞자리에 앉았다.

두 여인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다방에서 서로 몸을 부둥켜 안고 말처럼 껑충껑충 바닥이 꺼지라고 날뛰며 반가워했다.

차를 단숨에 마셔버린 두 여인은 좁은 골목을 나와 어둠이 가득가득 채워진 상대원동 거리로 나섰다.

한참 동안 산 능선을 따라 걸어올라 와서 공터가 있는 파란 대문에 붉은 벽돌로 쌓은 케케묵은 연립주택 앞에서 두 여인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중에 혜린은 안일이지만, 대문 하나에 1층 입구는 주인이 살고 2층과 3층은 모두 단칸방에 부엌 하나 달려있는 월세 받는 건물구조로 되어있었다.

마치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들어가는 벌집 같은 곳에서 15세대가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고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악다구니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일벌처럼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가 밤에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공장에서 막노동하다가 밤늦게 벌집으로 돌아왔다.

산을 깎아 도로만 겨우 뚫은 상대원동 산비탈에는 생활이 어려워 궁색한 생활을 하는 고독한 젊은 근로자들에게 그나마 안식처가 되었다.

이들은 처음엔 사글세나 월세로 겨우 간동 간동 살아가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전세나 조그만 집을 장만하여 철새처럼 여기를 떠나가곤 했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총각 처녀들은 가지각색으로 나름대로 살다가 서로 눈만 맞으면 생활비를 절약한다며 동거생활부터 시작하는 청춘 낭만의 보금자리였다.

자취방에 오자마자 두 여인은 피곤한 듯 가지고 온 작은 가방을 아무렇게 방구석에 내팽개치고 침대에 벌렁 짜부라져서 지나간 이야기들로 꽃 피웠다.

풀잎처럼 침대에 누워있던 혜린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숙을 향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궁금한 듯이 넌덕스럽게 물었다.

몇 번이고 생떼 거리로 아득바득 다그치게 되묻고 들들 볶듯이 조르자 지숙은 결심한 듯이 혜린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아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이 암묵적으로 다짐받았다.

긴 한숨을 내쉬고 난 후, 지숙은 더듬이질하듯 말하는 이야기는 점입가경이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지숙은 집에 밭뙈기 하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학교를 포기하고 성남서 결혼한 언니 집에서 취업할 때까지 눈칫밥을 먹으며 설거지를 하거나 가사 일을 도우며 함께 살았다.

성남시 상대원동은 공단이 많아 공장에 막노동 취업하기 쉬워 가난한 막노동 근로자들이 모여 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형부와 언니는 같은 신발공장에서 막노동하다가 눈 맞아 경제적 빈곤에서 돈 아낀다는 생각으로 결혼하기 전에 동거생활부터 시작했다.

언니 부부는 전셋집에서 큰방을 사용하고 지숙은 문간방을 취직이 될 때까지 사용하면서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밤이었다.

온몸이 노작지근하고 삭신이 쑤시어 혼자 안방에 납작 업어져 너나 할 것 없이 인기 있는 T.V 드라마를 보며, 지난날의 첫사랑 연인 봉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들이 흘려가도 뼈 속 깊이 사랑의 찌꺼기를 남긴 그 남자에 대한 아리아리한 기억들을 지숙은 지울 수가 없었다.

꼬리가 없는 긴 밤은 한 때나마 절절이 애틋한 사랑의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기억 속엔 끝없는 욕정의 화신이 되어 생각의 늪으로 침몰시키고 있었다.

한없이 무정한 지난날 도릴 킬 수 없고, 아쉬워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리운 시절 미련만 남았다.

지난날 멋진 사랑의 찌꺼기에 점몰 되면서, 상상의 날개의 꿈은 여름날 푸른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주천대 물 언덕이 아련히 보였다.

달빛은 강물과 모래사장 위로 하얀 밀가루 뿌린 듯이 은빛으로 차곡차곡 덮고, 바람은 불어와 강가에 솟아오른 잡초 풀을 흔들어 됐다.

하얀 모래밭에 벌렁 누워버린 지숙에게 은빛 실바람이 곰실곰실 다가와 찰거머리처럼 진득대며 붙어 양파껍질 벗기듯이 속옷을 벗겨버렸다.

엿가락처럼 긴 손가락과 발끝에서부터 불꽃이 감전된 듯 짜릿한 쾌감이 몸속으로 튀면서 조그만 입과 코 구멍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바닷속의 바위에 붙은 말미잘의 촉수를 헤집듯 비좁은 귀여운 성기 속으로 오매불망 갈망한 대물이 조금씩 헤집고 들어왔다.

보들보들한 느낌에 늘씬한 두 다리로 알궁둥이를 하늘 높이 치켜든 지숙은 본능적인 사랑의 성애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물이 민물장어처럼 구석구석 휘 젖고 다니자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생각은 자신은 이미 미늘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도리깨로 보리타작하듯 동물적 행위가 계속되자 굴욕을 참지 못해 낙담한 마음에 몇 번이고 끝내라고 소리쳤으나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아 몸부림치다가 눈을 번쩍 떴다.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은 나무때기처럼 발랑 자빠져 나동그라져있고, 그 위로 늙은 호박 덩어리 같은 대머리가 거푸집처럼 덮쳐있다.

낮 익은 얼굴로 색정적인 행위를 보자 혼비백산하여 배신감과 혐오감에 뜬눈을 되감고 모든 것이 백계무책으로 별수 없다는 생각에 체념해 버렸다.

공장에서 야근해야 할 사람이 한강에 배 지나간다는 듯이, 죽 떠먹은 자리 표시 안 난다는 듯이, 동물의 본능적인 욕정을 풀기 위하여 안달을 내고 있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푸른 하늘 먹구름 지나가듯,

맑은 강물 흙탕물 흐르듯,

바닷속에 해일이 끓듯이 생각지도 않은 것이 부지불식간에 생기자 지숙은 시정잡배들만이 하는 비열하고 치졸한 행동에 대한 배타심과 심난한 생각을 줄 끊어진 연처럼 어디론가 날려 보냈다.

바끄럽게 조용히 구구절절이 말하는 지숙의 얼굴엔 눈물이 샛강 물 되어 흐르고 있다.

다붓이 앉아 괴괴망측하고 얼토당토 한 말을 듣고 있던 혜린은 눈가에 그득하게 이슬 같이 맺힌 지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참하고 민망스럽게 느낀 혜림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심란한 마음만이 내재됐다.

마음이 소담하여 행동이 소심한 두 여인 사이에는 어두운 침묵만이 흘려갔다.

사랑의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