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짝짓기
무더운 여름날! 안동 태화동으로 이사를 와서 살림을 차린 혜린은 회사에 다니는 태평을 기다려 저녁밥을 같이 먹으려 했으나 지쳐서 단칸방을 나와 버렸다.
낙동강 중류가 흐르는 강둑의 철길을 건너가는데 하늘에는 둥글고 휜 상현달이 빛을 담아 진하게 품어내고 둑길 위로는 수은등이 엷은 분홍색으로 어둠을 잠몰시키고 있었다.
낙동강 하류로 흐르는 강물은 금빛과 은빛 비단을 펼쳐놓고 가무스름한 곡선으로 강물 띠를 만들어 놓았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혜린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섶에 오른 누에의 실오리처럼 끝도 없이 뽑아내며 강둑길을 따라 띄엄띄엄 걸었다.
갈대숲이 우거진 강둑 따라 마뜰 강변까지 걸어가면서, 덤불 속에서 풀벌레의 울음소리 듣고, 강물 위로 달빛이 하얀 은줄로 수놓은 비 단수를 보았다.
달빛은 어둠을 야금야금 잡아먹어버린 강둑 모퉁이에는 검은 승용차 하나가 조금씩 흔들거리다가 차츰 파고처럼 격하게 흔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연인들만의 짧은 시간과 좁은 공간 속에서 그들만의 번개를 타고 짝짓기를 하면서 무한한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혜린은 했다.
가을철이 되면서 집에서 놀고만 있을 수 없어 혜린은 아이들의 학습지를 돌리며 가리키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민속명절 보름날이 되자 친구가 운영하는 “목촌”에서 보름 밥 먹고 가라는 연락을 받고 혜린은 신바람이 나서 식당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식당에는 친구와 같이 낮선 남자가 이미 와서 불판에 한우 생고기를 굽어가며 혜린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친구는 매상을 올릴 생각으로 두 사람을 짝짓기 하듯이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시키면서 술좌석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나갔다.
싫지 않은 마음으로 혜린은 소고기를 안주삼아 주는 되로 술잔을 받아 삼켜버리니 술이 식도를 통하는 짜릿한 감칠맛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방 안의 분위기는 가을철 들판의 곡식 익어 가듯이 무려 익어갈 무렵에 남편 태평이로부터 갑자기 혜린에게 전화가 와서 지금 어디냐고 다그쳐 물었다.
직장에서 고된 노동일 하는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짜증 난 음성을 듣고 나니 불같은 반발심이 울컥 치솟았다.
홧김에 마신 술이 빗장걸이를 하지 않은 대문처럼 혜린의 마음은 가속도로 열리면서 몸은 물에 물감 풀리듯이 흩어지며 허물어져 내렸다.
아렴풋이 가몰 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혜린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으나 벌써 어둠이 가무끄름해지기 시작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술을 시원하게 변기통에 가득 쏟아 내고 술 깨기를 기다리며 뚜껑을 닫고 엉거주춤 앉아있자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비몽사몽 가운데 혜린은 흥분된 수컷 짐승이 자신을 향해 욕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굴리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은 듯이 덮쳤다.
어리벙벙한 생각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잘생긴 남자의 동물적인 행동에 혜린은 자신도 모르게 끝없는 욕정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여자와 남자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좌석으로 돌아오자 식당 여자는 이상한 눈빛으로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느냐는 식으로 지그럭거리며 불평했다.
주인 여자가 잘생긴 남자보고 혜린의 남편이 들이닥치기 전에 빨리 노래방으로 피하라고 독촉하여 가기가 무섭게 태평이가 다급하게 들이닥쳤다.
아연실색한 혜린은 알짝지근하던 술기운과 화장실에서 일어난 즉석 사랑의 여운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분에 오히려 태평에 대한 화가 치밀었다.
주인 여자는 재빨리 눈치를 채고 방을 둘려보는 태평에게 여자 친구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갔다고 애교 섞인 음성으로 말하며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여자들끼리 술을 마셨다는 여자주인의 말을 들은 태평은 거짓말을 하는 줄 의심이 갔지만 그나마 마음속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한 혜린은 오히려 다른 사람 보기 창피하다고 하며 큰소리치자 태평은 자신이 오해한 것 같은 헛갈리는 생각이 들어 말이 없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태평을 바라보던 혜린은 자신의 찝찝한 행동에 대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여자주인보고 남자가 기다리는 노래방으로 가자고 했다.
노래방으로 가면서 남편이 저녁에 조금 늦게 들어오거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안달이 나서 마치 의처증이 있는 것처럼 혜린을 달달 볶는다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혜린은 남편과 아근 바근 싸우기 싫어서 자신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그렇거니 생각하고 되는 대로 그날그날 근근이 살아간다고 했다.
그런 남편과 어떻게 결혼했느냐는 식당 주인 여자의 물음에 혜린은 조금 쑥 서러웠지만, 남편과는 회사 동료직원으로서 만났다고 근성으로 대답했다.
남편과 둘이서 딱! 술 한 잔 마시고 여관 간 것이 임신이 되자 애걸복걸 매달리는 바람에 결혼을 한 것이 지금 와서 월세 방에 살아간다고 했다.
두 여인들이 이야기하며 뜸직뜸직 걸어온 것이 안동댐 진모래까지 왔다.
호수 언덕 위에 우뚝 선 노래방 건물의 불빛이 아슴푸레하게 흘려 나오고 바다처럼 검푸른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혜린의 마음은 호수 밑으로 침습됐다.
지금까지 아근 바근 살아온 자신의 처지가 호수 위에 물수제비처럼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애달파서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노래방에서 만나 엉망 지창이 되도록 노래 부르며 술을 마시다가 미리 잡아둔 여관으로 들어갔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며 오직 하나의 동물적인 행동으로 인한 열기는 방안 가득히 채우고 있는데 혜린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서 무엇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다급하게 다그치는 태평의 말에 화가 머리꼭지까지 오른 혜린은 지금 열심히 남자와 10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큰소리치는 혜린의 목소리에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줄 아는지 집에 빨리 오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참 신나게 세 사람이 엉켜서 욕정에 몰입되었는데 찬물을 뿌렸으니 기분이 잡쳐 다시 불을 지피기는 정신적으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없어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순간적 분위기 따라 동물처럼 짝짓기를 하여 욕정을 배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혜린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