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의 역사
1. 서언
민간신앙은 학문상으로는 정확한 규정은 내리기 어려운 개념이며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민간신앙의 보편적인 의미는 민족적 특성이 강한 민족종교나 신앙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민족종교의 특성은 민족적 전통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고 민족종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외래 종교에 비하면 전통성과 민족의식이 강하게 밀착되어 있어 종교를 뜻하지만, 미신이라고 불릴 만큼 내용이 정립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나 서민 또는 대중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민족종교는 민간신앙 또는 민중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2. 역사
1) 고대
부족 국가 시대의 민간신앙은 단군과 관련이 된 신화에서부터 시작되며, 종류는 환웅, 동물 신, 식물 신, 자연신, 지신 등이 있다.
단군은 신비로운 과정에서 탄생하여 초인간적인 능력 가지고 태어나서 바람, 비, 구름을 다스렸으며, 곡식의 풍년, 인간의 수명, 질병, 형벌, 선악까지 주재하였다.
단군은 군주로 간주되었고,, 죽은 뒤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으므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각 부족 국가에서는 연중행사로 제천의식이 행하여졌다..
2) 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신앙 대상은 매우 다양하여 도깨비, 우상, 역귀, 자연 신, 동물 신, 식물 신, 왕신, 장군 신 등 있었다.
천신에 대해서는 하늘과 큰 인물을 직접적으로 잇는 독특한 신앙 형태를 보였다.
민간신앙에서는 천신, 상황, 일신, 월신, 천사 등 있었으며, 백제와 신라는 산신을 숭상하여 산신에 제사를 지냈다.
신라시대는 오악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산악신앙과 함께 삼국시대는 용에 대한 신앙이 있었으며, 삼국유사에는 역신과 동물 신, 기타 신들이 있었다.
3) 고려
고려시대는 생활면에서 민간신앙이 많았으며, 병이 생기면 약물치료보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국가 행사에서부터 개인 생활까지 무격(巫覡)에 의지했다.
기우제, 기은제, 재앙을 물리치고 병을 치료하는 일에서부터 서낭과 산신에 비는 의식에 무격이 참여했다.
불교 의식과 민간 의식이 결합하여 연등회와 팔관회 행사하며 신봉하였으며, 고려 왕실과 관련된 민간신앙으로는 용신제가 있었다.
마을과 사찰의 입구에 세워진 장승은 잡귀를 막는 수호신, 경계의 표시 등으로 이용되었으며, 서낭, 소도 등과 함께 마을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4) 조선
건국 초 태조는 원단을 한강 서쪽에 설치하고, 마니산에 단을 설치하여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는 가택 안에 성주신을 대들보 위에 놓고 집안의 평안, 무병, 장수, 행운, 다남 등 위한 신을 섬겼으며, 전국의 명산을 비롯하여 마을 입구, 고갯마루 등 무수한 서낭당이 있었다.
개화기 이후에는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미신 타파라며 억압을 받게 되었으나 민족의 마음속에 흐르는 민간신앙의 향수가 남아 있다.
3. 결론
민간신앙은 가족이 거주하는 집을 중심으로 하는 가신신앙과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마을신앙, 삼국시대 이후의 무속신앙이 있었다.
이러한 민간신앙의 특징은 신앙의 대상으로 천신, 산신, 사령 등이 있었으며, 민간신앙은 개인 신앙이라기보다 생활공동체 신앙으로서 다른 종교로부터 형식을 체계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결국, 민간신앙은 생사화복에 집착되어 있으나,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근대화를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장해 요소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