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즐거움
미학이라는 것은, 미의 체험을 통하여 미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이론적 소양을 넓히고, 미학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미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에서 미학 발전에 세계적인 명성을 높인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하여 미학의 즐거움을 갖도록 하고자 한다.
1. 중세 미학의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미학을 집대성하였으며, 그는 1225년 이탈리아서 태어나서 철학, 신학 등을 하였으며, 저서로서, 신학대전, 진리에 대하여, 신의 능력에 대하여 등이 있다.
그는 기독교 교리가 인간의 영혼을 지탱하던 시대에서 파리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에 말수가 적고 신중하여 “벙어리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1274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부름을 받고, 리옹 공의회에 참가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에 시토회 수도원에서 49세의 나이로 병사를 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가톨릭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 그의 신학과 철학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미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미라고 하였으며, 이는 미가 적합한 비례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각이 적합한 비례를 지닌 사물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이들 사물이 지닌 비례가 인간의 감각기관 자체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술작품은 인간의 영혼에서 나오며,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창조물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미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며, 이는 인간이 지닌 고유 능력이라고 하였으며, 시각과 청각은 영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감각이며, 아름다운 대상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하였다.
인간이 미를 인식하는 감각은 생물학적으로 순수감성이 아니며 윤리의식처럼 순수 이성도 아닌 그 형식만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는 미의 세 가지 요소를 1) 완결성 혹은 완전성으로서, 완전하지 못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추하기 때문이다.
2) 적합한 비례 혹은 조화이다.
3) 명료성으로서, 선명한 색을 띠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되므로 미는 완전성 조화 속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2.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서 가정 뛰어난 화가로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서, 14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서 예술, 철학, 과학 분야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저서는 회화론 등이 있다.
그의 작품으로서, 프랑스 루브로 박물관에 소장한 세 가지 보물 중에 하나인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명성을 차지한 예술의 대가인 다빈치의 그림 작품이다.
모나리자는 풍만한 몸매와 붉게 물들은 얼굴, 귀족 머리 모양의 곱슬머리가 어깨를 드리우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눈빛과 미소를 품은 모나리자는 많은 수수께끼를 남겼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는 군사 엔지니어, 건축사, 화가, 조각가 등의 신분으로 밀라노 대공을 위해 17년간을 일을 하였으며, 일생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 기적을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가이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 대하여 과학과 예술의 결혼을 했고, 철학이 이 완벽한 결합 위에 입맞춤을 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회화는 자연계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의 모방이며 자연의 합법적인 지식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라는 고대 그리스 현실주의 학설을 계승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어도 예술로서 자연의 모든 형태를 재현할 수 없으며, 훌륭한 화가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거울은 화가의 스승이므로 화가의 두뇌는 마치 거울처럼 사물의 색채를 반사해서 받아들이고 자신 앞에 놓인 물체를 형상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가도 자연과 시합을 하고, 아울러 자연을 능가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회화예술의 성질과 미학의 특징을 그는 회화가 보는 것보다 직관적인 진실성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보다 더 풍부한 형상성, 개관성과 시각으로 느끼는 진실성을 가지고 있어 조각보다 풍부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회화는 가상 창조적이며 자유로운 예술로서 철학이다.”라고 하였다.
3. 이성주의 미학 존로크
존 로크는 미는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며, 그는 1632년에 영국에서 태어나서, 철학, 미학 체계를 수립하였으며, 영국 경험주의의 창시자로서, 민간 오성론, 통치 이론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하이트 보드나 암실 혹은 한 장의 백지와 같이 아무런 선험적 경험이 없다고 하였으며, 백지 위에 찍히는 것들이 관념이며, 이 관념은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외적 대상을 지각하는 감각과 인간의 심적 작용에 관한 내적 지각인 “반성”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감각은 감관이 느끼는 외부세계에서 유래되고, 반성은 영혼이 관찰한 것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며, 이 두 관념에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하였다.
그의 경험주의 미학은 경험주의 철학에서 인식론이 심미의 영역에 직접으로 응용된 것으로서 미를 복합 관념으로 보았다.이러한 복합 관념은 몇 가지 단순 관념이 합쳐진 미와 같으며, 관념의 주체인 심리 작용을 분석하여 미의 본질 성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의 경험론 미학은 미를 인식하는 심적 작용의 분석과 심미 주체의 감각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