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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미국 자유주의 역사

미국 자유주의 역사

미국의 자유주의는 흑인 문제로서, 그 뿌리의 근원은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후천적인 태도에서, 유전학이 아니라 역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인종관계의 결정요인은, 생물학 대신에 역사학에서 찾는 접근법은 정계와 학계에서 찾는 것이 지배적이며, 1619년 제임스타운의 흑인 노예선의 도착기준으로 하면 벌써 400년이 지났다.

이는 미국의 자유주의 역사관에도 한계가 있는 것은, 흑인의 고난이 노예제와 인종차별로 인해 결정되었다고 존 칼훈 등이 주장을 했다.

자유의 여신

미국의 자유주의와 흑인간의 관계를 역사 속에서 언급하여 보면, 현재 흑인 급진주의가 자유주의와 흑인과의 관계를 갈등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으로 생각을 했다.

대규모 노예제는 중세암흑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르네상스, 과학혁명, 상업 혁명의 산물이며, 봉건 세력이 아니라 신흥 민족국가에 의해 확장되었다.

또한, 노예제의 강한 추동력은 영주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이었으며, 이교도의 제례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교리를 정당화이었다.

 

미국의 자유주의의 근간으로 유명한 존 로크는, 1669년 캐롤라이나가 식민지가 되었을 때, 캐롤라이나 기본 헌법에 작성을 했다.

이 헌법의 구절에서 “캐롤라이나의 모든 자유인은 사상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자신의 흑인노예에 대한 절대 권력과 권한을 가진다.”라고 했다.

그러나 독립혁명에서 힘을 얻은 미국 자유주의는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그 이론이 가장 낭만적으로 표출됐으며, 노예해방을 처음으로 의사표시 한 사람은 제퍼슨이나 다른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버지니아 주의 총독 던 모어 경이었다.

그는 독립선언문 작성 6개월 전에 식민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무장한 노예를 모두 해방시킨다고 선언을 했다.

왕정주의자 던 모어 경이나 보수주의자 워싱턴 총사령관, 자유주의자 토마스 제퍼슨도 노예를 반대하는데 동참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미국역사 초기에는 흑인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해관계의 충돌과 편의주의에 따라 결정되었다.

미국 헌법에서도 국가의 통합을 최우선으로 한다면서도 흑인의 자유는 귓전으로 하였으며, 얼마 후,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에서 남부의 노예제는 기이한 제도였으나, 노예제는 연방정부의 공식 정책에 의해 유지되고 보호를 받으며, 의회, 대통령, 대법원에서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권리장전이 제정한지 2년 후, 1793년 의회는 최초의 도주 노예 법을 제정했으나, 처음부터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젝슨과 제퍼슨은 뉴딜 시기의 다원적 자유주의 초기자로서, 어떤 집단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희생시킬 수 없는 사회라고 했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흑인에 대한 미국 자유주의자의 태도는 전형적으로 흑인을 노예로 만들어서도 안 되면, 흑인을 사거나, 팔아서도 안 되고, 함께 어울려도 안 된다고 했다.

흑인이 할 수만 있다면, 생활을 꾸리고 부자가 될 수 있고,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하는 일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흑인은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배심원석에 앉을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법원에서 변론하고, 의회에서 대변하고, 간호할 수 있으며, 연주실, 강의실, 극장, 교회에서 어울리거나 백인 딸들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백인들은 흑인은 다른 인종이며 열등하므로 흑인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그 자리를 지키게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미국의 노예제는 노예주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북부 정치인들과 기업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첨예하게 부딪치게 되자 폐지됐다.

이는 도덕관념이 가미된 편의주의가 노예 해방을 이끌어 냈으며, 폐지론자들이 링컨을 오랫동안 끊임없이 압박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노예해방 후, 흑인들이 남부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북부 정치가 흑인의 효용가치 기반을 급진적 재건을 했다.

미국의 자유주의가 흑인을 위해 이루어 낸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미국의 자유주의가 정점일 때는 흑인의 정의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러한 것들은 미국의 노예제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사실이고, 힘과 특권이라는 정치적 사실이며, 인종차별주의라는 심리적인 사실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