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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데카르트의 철학사상

데카르트의 철학사상

르네 데카르트(R. Descartes)는 1596년 3월 31일 프랑스의 가장 풍치가 아름다운 서쪽 투렌 지방의 라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 살 때에 유명한 라 플레슈 학원에 입학하여 8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다가 졸업을 한 후, 1년 동안 푸아티에 대학서 법학 공부하여 법학사로 졸업을 하였다.

그는 20살 때에 네덜란드로 가서 모리스 드 나소의 군대를 지원하여 15개월 동안 장교로 지냈다.

1618년 그는 이삭 베크만을 만나 그의 영향을 받아서 방법론 형성과 이론적인 연구, 물리 수학적 흥미를 갖게 되어 물리 수학적 연구를 하였다.

데카르트

주요 내용은 “진공에서의 돌의 낙하, 유체가 끼치는 압력 문제, 현(弦)의 진동과 그 법칙에 따른 음계의 비례적 조화 등이었다.

1618년 독일에서 30년 전쟁이 일어나자 독일로 가서 구 교군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의 군대에 들어갔다.

그는 프라하를 함락당하는 패전으로 일가친척 등은 네덜란드로 망명을 하였으며, 신 구교 양군이 대치한 상태에서 휴전이 되자 그는 휴가를 얻어 다뉴브 강기슭의 작은 집에서 방의 난로 가에서 종일 사색에 잠기는 생활을 하였다.

그는 난로 방에서 보낸 사색의 시간에서 꿈을 꾸고 나서, 신이 자신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철학전체를 홀로 새롭게 하는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믿게 되었으며, 이것은 일생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으며, 그가 철학자로 살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619년 11월 10일 이때 그는 작은 난로 방에서 홀로 어둠 속을 걸어가듯이 조심하면서 조금씩 그 어둠을 밀어젖히면 빛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그의 혼돈스럽던 세계의 윤곽이 차츰 분명해지고, 그 속에서 분명한 형태와 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었으며, 세계의 합리적 질서를 갖춘 모습, 우주의 비밀에 대한 해답을 그가 찾았던 것이었다.

그가 찾으려 했던 것은, 전체로서의 세상이었으며, 이는 세계를 위한 질서정연한 체계, 곧 “우주론”인 것으로서, 자연과학자들의 협동 작업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간의 인식 범위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동일한 방법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에서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방법적 이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어떠한 문제라도 순수하고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오직 한가지며, 그 인식의 방법이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방법에 대한 원칙은, 첫째, 명증적(明證的)으로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 않는 어떠한 것도 결코 진실로 받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 생각은 순서에 따라 하되, 가장 순하고 인식하기 쉬운 것부터 조금씩 단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넷째, 모든 경우에도 아무것도 빠뜨린 것이 없다는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하고 전체적으로 훑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해석기하학은 기하학적 도형과 그 관계를 대수적 방식으로 나타내는 연구로서, 도형은 단순화해서 오로지 선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방법의 이념형성은 탐구의 결과로 모든 학문에 통하나 일반적 방법으로 이루어 나갔으며, 모든 종류의 대상에 쓸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그의 심령적인 자연관은 모든 사물 중에서는 오직 활동력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 자비, 조화라고 하였으며, 그는 자연의 세계를 “은총의 빛”이 아닌 “자연의 빛”에 비추어 인식하려고 했다.

이는 인간은 종교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얻고, 이성의 순서에 따라 합법칙적으로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 이성에 따라 올바른 질서의 방법으로 사물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에 맞서고 자신의 종교적 배경인 가톨릭의 정통적 교리와도 어긋나는 과학 설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철학가였다.

그가 고독한 은거생활을 통하여 자유스러운 학문연구를 할 수 있었으며, 네덜란드에 사는 동안 20여 번을 옮겨 살았던 것은 안정성이 없는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적인 안정성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완성과 지혜의 실현을 지향하는 철학가로서, 그의 형이상학적 입장에서는 신의 존재와 몸에서 분리된 우리의 정신이라는 존재를 설명하면서, 정신을 불사로 이끌어 낸다고 하였다.

그의 신의 인식을 이끄는 형이상학적 성찰은 자연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이것은 신과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자연인식을 연결함으로써, 형이상학의 체계를 완성하려는 구상이었다.

그의 방법은 기본적인 의식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끌어내는 의식은 명석, 확연하게 찾아낸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대상적 존재를 돌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이러한 의식의 개념을 넓은 의미의 의식은, 우리의 내부에서 생기는 현실적인 모든 경험을 뜻하며, 의식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내부에서 주의가 작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른 의미의 의식은 모든 존재 인식의 근거라고 제시하며, 인간이 그 내면에 정신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지칭하는 경우에 한 하여 존재와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정신의 역사로서 철학을 말하려고 했으며, 인생을 위한 유용성과 확실한 인식을 추구하며, 순서를 밟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었다.

그는 마치 홀로 어둠속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온갖 경험을 통하여 자기만의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하였다.

그가 남긴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신에 비유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