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예술

(113)
밀의 그림 "만종"에 관하여! 밀레의 그림 “만종”에 관하여! 장 프랑수아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의 지방 그레빌에서 1814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33년부터 그림공부를 시작하여, 1837년 파리의 들라로슈의 제자가 되어 파리교외의 바르비종으로 가서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과 자연풍경을 그리며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의 그림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바탕에서 사실적인 세부묘사를 했으며, 19세기 후반의 전통주의로서 모더니즘으로 전환하여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그의 그림 만종은 “감자의 수확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었으나, 그림을 교회의 종탑을 추가로 수정하여 “만종”으로 바꾸었다. 그의 그림 “만종”은 매일 하루 세 번씩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했던 농부들의 삶..
임이란, 무엇인가? 임이란 무엇인가? 1. 임의 의미 임이란 의미는 다의적이므로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임의 개념을 연인이나 애인으로만, 속단 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현대 시에서 나타난 임, 음악에서 나타난 임에 관하여 설명하고, 한국인들의 생활에서 임에 관하여 결론을 기술하고자 한다. 2. 현대 시에 나타난 임 현대 시에서 “우리의 님”은 나라에서 필요한 사람, 우리의 기림을 받을 사람을 지칭하면서, 개 아적인 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임이라 하였다. 예를 들면, 최남선의 님은 인물에 머물지 않고 조국의 강과 산까지 확대했으며“, 태백의 님을 이별함”에서의 님인 것이다. 또한, 이광수의 님은 조국이나 호국 신으로 표현했으며, 신체시에서는 자립정신을 바탕으..
김홍도는 누구인가? 김홍도는 누구인가? 1. 일생 김홍도는 1745(영조 21)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호는 단원이며, 문인화가인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그는 29살에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정조)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관목관의 직책으로 사포서에서 근무를 했다. 그는 1781(정조5)년 정조의 어진 익성 관본을 그리며 동 참화사로 활약하며 찰방을 제수받았다. 1788년 김응한과 함께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의 명승지를 다니며 그림을 그려서 임금님에게 바쳤다. 1791년 정조의 어진 원유 관본을 그렸으며, 그 공으로 충청도 연풍현감으로 봉직하다가 퇴임 후에 사망을 했다. 2. 화풍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하여 신선과 같다고 했었다. 그는 산수..
너와 나의 관계 너와 나의 관계 너는 나를 알아주지 않게 되면, 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이모든 것이 라고하면 그만인 것이다. 너를 위해서 나 스스로 새 틀만큼 가벼운 도움이라도 주었던가를, 너를 위해 믿음을 주었는지, 거짓말로 나를 포장하지 않았는지를, 한 번쯤 생각하여보면, 이모든 것들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너를 사랑하면서도 나의 신의를 두텁게 쌓았는지를 생각해 보아도, 나의 말과 행동에서 너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고 믿음을 주었는지를, 정성으로 인정을 베풀면, 이모든 것은 실타래 풀리듯 풀리는 것이다. 세상 크고 작은 일들은 모든 것이 이치에 따라서 흐르는 것이거늘. 너를 잃지 않으려면 의와 예를 다해 믿음을..
귀가 잘린 빈센트 반 고흐 귀가 잘린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출신인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으나, 사후에는 그의 그림인 해바라기(Sunflowers)는 100년이 지난 뒤에 580 역원으로 작품이 엄청난 가격으로 팔렸다.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쥔더르트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개신교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좌절한 후에 20대 후반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아버지의 친구에게 상담받으러 갔으나 그 집의 손녀딸이 그의 모습을 보고 기절할 정도로 불결하게 몸을 관리를 했다. 그는 애를 쓰도 그림이 팔리지 않아 화구상이 된 동생에게 의지해 생활비를 얻어서 지냈으며, 모델료나 그림 도구를 사는 많은 돈이 소요되어 먹지도 못하고 공복에 담배만 피우는 생활..
독재자 히틀러의 연인 독재자 히틀러의 연인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연인이 있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연유는 그는 사생활에서 자신의 일생에서 없다며 평생을 독신을 고수하였다. 이는 나치스의 공식 의견으로서 카리스마적 독재 지도자에 대한 상징성을 배가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실제로 그에게는 에바 브라운이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1910년 10월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시작은 뮌헨의 호프만이라는 사진관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브라운의 미모에 현혹된 그는 가명으로 접근을 하였으나, 브라운은 단박에 정체를 눈치를 채고 호감을 가졌다. 그는 사진관을 방문할 적마다 브라운에게 꽃다발을 주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되기까지는 나이 차이가 23살이나 차이가 나서 이성적인 연인으로서 만나는 것보다 부녀..
피카소의 본능적인 사랑 피카소의 본능적인 사랑 파블로 피카소는 성적 욕망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예술의 혼을 불태운 천재의 화가로서, 스페인이 낳은 천재 중의 천재화가로서 “청색시대” “장미시대”의 여러 작품으로 평판과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화가이었다. 피카소의 화풍은 많은 화풍을 달리하면서 예외 없이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서 그림의 배경은 언제나 생동감이 있었다. 피카소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인은 첫 번째 아내인 올가 코클로바 이었으며,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의 피를 물려받았다. 결혼당시 피카소는 37살이며, 올가는 27살로서 10살의 나이차이가 났으며, 결혼 무렵의 피카소는 신고전주의 화풍이었으며, 올가는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었다. 올가는 피카소의 삶과 예술에..
사랑과 욕망의 톱니바퀴 사랑과 욕망의 톱니바퀴 사랑과 욕망의 두 개의 톱니바퀴는 서로 간의 정교한 작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고 하고, 이슬처럼 슬픔을 안고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의 순수함은 아름다움을 잉태하고 욕망의 지나침은 괴로움의 슬픔을 잉태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뒤틀림 삶을 살아가도록 하게 된다. 사랑의 아름다운 향기에 심취한 삶은 정신적 욕망의 구렁텅이에 벗어나며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을 잊게 되고 곤궁에서 벗어난 풍요한 삶을 살아간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 정열적으로 욕망을 향한 지독한 본능적인 과욕은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며 절망적으로 자신의 품격을 침몰시키게 된다. 사랑 없는 지나친 욕망은 운명의 신은 질투심과 분노로 희망을 앗아 가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눈물자국을 남기게 되어 후회하는 ..
삶의 자유 삶의 자유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 입고 싶은 것처럼 일상생활을 구속하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으므로 바람처럼 가볍게 스쳐가더라도 가슴속 깊이 고이는 맑은 강물처럼 혼자만이 사랑하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삶에서 원하는 꿈을 갖기 위해서는 낡아빠진 허룩한 생각을 버리며 간절히 원하는 명예나 재산을 보다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자유는 존경받는 사랑으로 행복해 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고결함으로 진정한 삶의 자유를 느끼는 것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미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남과 나의 인간관계 남과 나의 인간관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여 보라.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이 모든 것이 아니면 그만인 것이다. 남을 위해 나 스스로 새 틀만큼 가벼운 도움이라도 주었는가, 벗을 위해 믿음을 주었는지, 거짓말로 나를 포장하지 않았는지, 한 번쯤 생각하여보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면서 나의 신의를 두텁게 쌓았는지 생각하여 보라, 나의 말과 행동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믿음을 주었는지, 정성을 다해서 인정을 베풀면 어려운 것은 실타래처럼 풀린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가 이치에 따라서 흐르는 것을. 벗을 잃지 않으려면 의와 예를 다하여 믿음을 주어야 하거늘, 혼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