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鄕約)이란 무엇인가?
1. 서언
향약에 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부진하지만, 우리 사회에 유교적 예속 내지는 미풍양속의 정착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이는 중국의 “여씨 향약”의 사대 강령을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첨삭하여 조선적 향약을 마련한 이황, 이이 등의 노력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 사회에 수용되어 지방자치 실현과 사회 안정에 이바지한 전통적인 향촌의 자치규약인 것이다.
2. 향약의 원류
1) 신라시대의 호족세력의 상호간의 상하관계를 인정하고 포섭하여 군현제 및 속현 제로 편성하여 대호족은 부나 대군이 되고, 소호족은 속현이나 향, 부곡이 되었다.
2) 조선시대 최초 이성계가 향약이라 하여 헌목 41조를 만들었으며, 그 후, 효령대군이 향헌을 반포하였다.
3) 민간에게는 계(契)와 상통하는 향음과 같은 의식을 가진 관습이 전국적으로 자생되었다.
4) 농촌에는 향촌계가 조직되었다는 것이 명종실록에 시사되었으며, 계에는 향촌의 모임을 뜻하는 향리 취지가 있었으며, 계원들을 향도라고 하였다.
5) 지역사회의 전원을 망라한 향약이 보급되어 향규와 향도의 약속이 종합되었으며, 이러한 향약을 “향약계”라고 하였다.
3. 향약의 시대적 배경
조선의 향약계 출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의 사림파 조광조 등 주자학적 이상사회이상 사회 실현인 하, 은, 주 삼대의 이상 사회 구현을 위하여 서둘었으나 민속을 단속하는 향약은 좋은 방편으로 간주되어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향약실시가 시들은 것은 1519년 조광조 일파가 몰락하면서, 기묘사화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연유는 향약의 본뜻과 달리 감사가 실시를 강요한 탓이었으며, 향약 실시의 현실적 측면에서 선악적으로 공정하지 못하여 인심을 발악하게 만들었다.
4. 향약조직과 운용
향약의 조직은 보통 민간의 유지가 발기한 경우는 자연촌락 몇 개를 합친 동계가 기본단위이며, 수령이 선도하는 경우에는 군과 현의 단위로 하였다.
주현 향약의 경우는 도약 정, 향약 정 등으로 하며, 덕망 있고 나이 많은 사람을 수령이 여론에 따라 선정하였다.
후기 향약의 특색은 관청과 양반토호가 연대 협력하여 상민 위에 군리라 하여 주현 향약을 출현시켰다.
5. 향약의 운용기관
향약의 운용기관은 처음은 유향소 중심으로 풍헌이나 집강이라는 곳에서 운영되었다.
그 후, 좌수의 대우를 향리로 격을 낮추자 효종 5년의 영장 사목 이래, 가문을 자랑하는 토호적인 양반들은 좌수 직을 맡지 않고 향청을 멀리하였다.
이러한 근거지를 향교로 옮긴 후에는 점차 향약 운용의 실권은 향청에서 향교로 옮겨 갔다.
6. 계의 종류
계는 사람들이 모임으로서 단체성에 의한 자율기능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능이다.
계의 종류는 자치조직적인 말단 행정조직도 계로 불렸으며, 안성부의 호적에 의한 가좌동계와 여의도계 등이었다.
상공 분야에는 보부상계, 육의전계, 사기계 등이며, 촌락 단위에는 금송계, 군포계, 보계, 우계 등이 있으며, 기타는 화수계, 종계, 갑계, 금란계, 상도계 등이 있다.
7. 향약과 계의 유사점
향약과 계는 그 취지와 운용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아 구별하거나 애매한 한 것이다.
이의의 “서원향약”에서는 약정을 계장이라 부르고, “이리동약”에는 약중인을 동계 지인, 약원을 계중이라 하며, 강신을 계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의 향촌 결계라든지 선조 때는 마을에서 자연발생적인 상부 상규의 조직을 계라고 하여 동약과 동계가 자연스럽게 혼용되었다.
8. 결 론
우리나라에서 향약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1983년 12월 김용덕 중심으로 향약 연구라는 것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향약에 대한 연구가 부진하므로 현대 지방자치시대의 안정과 의리 및 협동정신을 계승하여야 할 귀중한 전통이므로 향약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