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 후손들의 지폐
1. 몽골 제국
칭기즈 칸과 그 일족들은 몽골 공원에서 시작하여 중동 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우면서, 중국의 금 왕조와 남송 왕조를 정복하였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정복지를 중심으로 킵차크한국, 서아시아의 일 한국,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한국 등의 나라를 세웠다.
그 후, 중국일대는 칭기즈 칸의 후손인 쿠빌라이가 건국한 원 왕조의 통치를 받았으며, 이들의 네 나라는 국가들은 각각 분리되어 있었지만, 몽골제국의 일부분으로서 서로 연합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로 이어지는 대제국이므로 동서로 오고 가는 상인들에게는 편리한 휴게소, 숙박시설 등 상인들에게 편리한 교통로가 되었으며, 지금의 터키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통행로였다.
또한, 해상교역도 항주와 천주에 하역한 각국의 산물들이 운하를 거쳐서 북경으로 운반하는 경로가 되어 활발하여 육해상의 네트워크를 이슬람 상인과 유럽인 상인 그리고 선교사들이 활용하여 수많은 상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왕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상인, 이탈리아 북부의 상인들 등은 몽골제국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운반된 중국이나 인도, 페르시아의 물품을 수입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 상인들도 열심히 상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여 가장 먼저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2. 원의 지폐는 교초
원나라의 지폐는 북송은 교자, 남송은 회자와 같은 교차로는 지폐를 사용했으며, 송나라 시대에도 교자와 회자와 같은 고초를 동으로 만든 동전을 대신 사용했으며, 동전과 교환할 수 있는 태환 지폐를 사용했다.
원나라는 새로운 동전을 발행하지 않았으며, 교체는 실제로 동전과 교환할 수 없는 금속으로 가치를 지닌 화폐와 교환할 수 없는 불환 지폐를 사용했으나 이는 원나라의 신용을 ale고 유통하는 지폐이었다.
이러한 지폐는 가볍고 인쇄하기만 하면 가치가 생기는 편리한 것이지만, 쉽게 위조할 수 있고, 지폐를 과다 발행하면 가치가 떨어져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교토에는 액면에 “위조 범은 사형에 처한다.”라고 인쇄되어 있어도 교체를 위조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실제로 엄벌을 처했다.
원 왕조의 황제들과 그 일족 및 시하들이 티베트 불교 양식의 호화판 사찰을 건립하면서, 장식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많은 고초를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