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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사상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사상

키르케고르는 1813년 5월 5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7남매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에는 건방져서 선생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며,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자기보다 힘이 센 친구들에게 얻어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어린애처럼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냥하였으며, 항상 유머러스하고 변덕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매우 에로틱하다고 믿고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매우 순수하다는 말을 하였으며, 그의 철학은 변증법적이고 연습으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흥미의 정열을 다하여 탐구한 학문으로서, 철학이 유익하게 연구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연구를 하였다.

키르케고르

즉, 그가 그리스도교를 거부함으로써, 그의 생의 의미가 상실되었을 때, 자신의 생의 의미를 찾아낼 심산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연구를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는 철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철학을 월등하게 중요성을 부여하여 왔다.

그의 철학 연구에서는 종교라는 주제가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비록 그가 자신의 종교 실천을 포기하였지만, 실상 종교란, 진실한 철학자가 그것을 무시하기에는 인간생활에서 지나치게 현실적인 요인인 것이었다.

종교철학에 대한 그의 중요한 공헌의 하나는 종교성 A와 B라는 두 개형의 구별이며, 내재성의 종교와 각별히 그리스도교의 죄의 의미를 들어 특색을 부여한 초월성의 종교를 구별한 점이었다.

그는 자기 생활 속에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아직 그리스도인의 종교가 되지 못한 것을 겸손하게 인정을 하였다.

기도하는 키르케고르

1848년 그는 종교적으로 나를 때려 부쉈으며, 하느님은 자신을 막다른 곳까지 달리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을 의지하고서도 한층 높은 형태로 들어 올릴 수 없는 과업을 착수하도록 허락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한층 낮은 형태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일이 거꾸로 자신을 내면적인 종교교육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 후, 그는 종교적인 사상에 너무 몰두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가장 유능한 하인을 잃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사소한 이기주의적인 관심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이해 속에서 하느님과 한층 가까워짐으로써, 한층 깊은 의미에서 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끔 강요당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하였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런 공로도 자랑할 수 없음은 확실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신의 노력을 기꺼운 눈으로 보아주시고, 자신이 무서운 고통 속에서도 최후까지 견뎌냈다는 사실을 기쁜 눈으로 보아주시고 계시는 것은 내 위로가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오! 주여, 내 위에 당신의 손을 드리우셔서 자신을 붙들어 주신 것은 당신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오랜 고통의 시기에 있어서도 남들과 같아지는 방향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않도록 하였다고 했다.

오! 주여,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졌으며, 얼마나 허다한 많은 일들이 자신을 위해서 이루어져 왔는지 알 수 없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드려야만 할 일은 이질성(異質性)이 아니며, 그것은 자신의 과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남들과 같은 존재로서, 존재할 때, 있을 수 있는 안정성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 속에 머무르겠다고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