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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진보정당에 관하여!

진보당에 관하여!

진보당 조봉안

진보당은 1956년 11월 10일 조봉암 중심으로 한국의 혁신정당의 하나로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결성되었다.

8.15 광복이후,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세력으로서, 김구, 김규식 등 한국 임시정부 주류파 계열과 여운영 정점으로 한 근로인민당 우파인 제3세력이 중심이 되어, 1956년 조봉암 구심점으로 결성되었다.

1952년 8월 제2대 정.부통령선거에 조봉암이 진보주의를 내걸고 보수파와 대결함으로써, 정계에 등장하였다.

1955년 12월 22일 진보당 창당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조봉암, 서상일, 박기출, 이동화, 김성숙, 신숙 등 12명이 창당추진위원회 지도부를 형성하였다.

 

1956년 3월 31일 정.부통령후보자 지명을 위한 전국추진대표회의를 열어 표결로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 부통령 후보에 서상일을 지명하였으나, 진보당은 창당준비 과정에서 조봉암계열과 서상일계열의 주도권 쟁탈전이 되었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승만의 3선을 막기 위한 야당의 단일화로 민주당이 진보당의 기본정책일부를 선거공약으로 공표한다는 조건으로 진보당의 정.부통령 후보자가 사퇴한다는 타협안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협상안은 5월 6일 민주당 측 신익희 후보와 진보당 측 조봉암 후보가 전주에서 최종합의를 성립시키기로 한 회담 하루 전인 5월 5일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자가 급서해서 성립이 되지 못하였다.

 

야당의 단일 대통령후보는 조봉암이 되고 야당의 실효성이 있는 연합전선 형성을 위하여 진보당 측 부통령후보 박기출이 사퇴를 했다.

민주당은 협상의 원칙을 깨고 진보당 지지를 거부하여 조봉암이 실질적인 단일 경쟁자가 되었다.

1956년 9월 2일 진보당 창당추진위원회 중앙상임위원회에서 결의 하여 11월 10일 창당대회를 열어 결당을 하였다.

창당대회에서 위원장 조봉암, 부위원장 박기출, 김달호가 선출되고 중앙당 집행부서 간사장 윤길중이 되었다.

조봉암 중심이 된 진보당은 혁신세력 내에 여러 정파의 포용에 실패하여 인적구성은 혁신계열보다는 학생연맹, 서북청년회 등이었다.

 

진보당은 1958년 5월에 실시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최소한 독자적 교섭단체구성을 위한 20석 이상 의석확보를 목표로 선거준비를 하였다.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조봉암 등 검거되고. 중앙당 사무실 수색과 압수 등으로 진보당의 전면적 수사착수로 정당 활동이 마비되어, 2월 25일 공보실은 진보당 등록을 취소를 하였다.

진보당은 서울고등법원에 진보당 등록취소의 행정처분 취소신청을 냈으나, 대법원의 최종판결에서 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