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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술

조용필의 음악세계

조용필의 음악세계

조용필은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서 가수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 대중들의 꿈과 사랑,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한 국민적 가수가 된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스”를 결성하여 기타리스트로 나서면서 ‘파이브 핑거스“의 멤버로 활동을 하였다.

조용필 가수

그 후, 1971년 “김 트리오”를 결성하여 록음악으로 전환했으며, 1972년 “25 시‘활동을 거쳐서, 1974년 ”조용필과 그림자“를 결성하였다.

한 동안 가수활동을 중단했으나, 1980년 12월 건곤(乾坤)이라는 의미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개명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가 연주인으로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였으며, 그가 가수로서 대중들에게 가슴을 울리도록 히트한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이었다.

 

필자는 이 노래를 지금도 애창곡으로 부르고 있는 연유는 서민들의 마음속에 순수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애창곡이라는 이유보다, 한 시대를 평생 독신으로 개혁정치를 하다가 실패한 정치인으로 세상을 떠난 친형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속의 아픔이 눈물이 되어 마음이 외롭고 괴로울 때는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짓는다.

그의 음악세계에서 두드러진 특성은 여러 장르의 음악인 트로트, 발라드, 재즈, 래퍼, 댄스, 뮤직, 민요, 동요 등 모두 아울러서 부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국내의 유일한 가수라는 것이다.

그가 1980년 1월 동아방송(DBS) 연속극 주제가 “창밖의 여자”의 발라드 노래로 히트를 치면서, 창작 발라드 시대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1980년대 들어와서, 1970년대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어버리고 서양 장르의 멜로디와 리듬에서도 국내적으로 본격적으로 정착시켰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최초로 스타 반열에 올라서 한류의 원조로 일본에서 정상급 가수의 대우를 받으며, 일본 15개 도시를 순회공연을 하였다.

공연하는 조용필

그는 1980년~1986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가수왕“ 상을 여섯 번과 KBS 연말 ”방송가요 대상“ 최우수 남자 가수상도 휩쓸었으나, 방송 TV 출연을 스스로 그만두고 음악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음악세계는 특정한 장르나 주제의 분류 없이 무 장르 가수로서 대중들의 정서와 감정의 흐름에 완벽하게 호흡을 잘 맞추는 가수이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평소에 가지고 있는 마음의 충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순정으로 노래로서 발현시킨 가수이었다.

그의 “창밖의 여자‘는 국내 음반 판매가 사상 최고로 100만 장을 기록하였으며, 1994년 3월 전체 음반 판매를 1천만 장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운 그야말로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스타이었다.

그는 노래를 자신이 도취해서 부르지 않고, 정석으로 노래하는 가수로서, 원래 멜로디나 가사를 손상하지 않고 편곡해서 그대로 부르는 라이브 음악의 중요성을 중시하는 가수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인기를 유지할수록 자기 관리를 위하여 골프나 부동산 투기나 고급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정상의 위치를 유지해 나가는 분명한 가수이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시한다는 생각은 “주제”로서, 음악은 자신이라고 하였다.

노래는 가사도 곡도 먼저가 아니고 메시지가 있는 주제를 먼저 정한 뒤에 실제 음악으로 만들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인 리듬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면서 작곡에 제목으로 떠 올린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꿈을 생각한 자전적 노래인 “꿈‘은 직접 작사 작곡한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이었다.

화려한 도시를 꿈꾸며 찾아왔지만, 초라한 문턱이라는 내용인 꿈의 노래는 자신이 화려한 꿈 꾸는 도시가 아님을 잘 표현한 노래이었다.

결국, 조용필의 음악세계는 노래에서 꿈을 현실로 지향하며, 사랑과 이별, 우정 그리고 자연 등을 고통 속에서 발현시키는 순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로서 한국적인 멋을 창조한 천재적인 글로벌 시대의 대형 가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