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사상에 관하여!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1836(헌종 2)에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로서 본관은 나주이며, 자는 미용, 호는 다산 등이며, 경기도 광주 출신이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그의 사상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1. 철학사상
1) 천명론
천에는 영명주재지천과 창창유형지천이 있으며, 천명으로서는 부성지명은 윤리적 천명이며, 득위지명은 정치적 천명이다.
2) 인성론
정주학파의 성리설에 가름하여 성기호설을 주장했다.
천명지성의 천명은 윤리적 천명으로서 인정 내 존재하므로 인간의 본성은 이 천명과 더불어 이중 구조적 단일체를 형성한다고 했다.
2. 윤리사상
1) 인의
인은 2인이라 하여 두 사람의 윤리적 관계를 파악하여 인륜지성덕이라 하며 결론적 성과로 파악했다.
2) 서와 덕
서에는 추서와 용서가 있고, 덕은 하늘에서 얻어진 허령불매한 심성이 아니라 자신의 직심의 실천으로 얻어진 인격을 의미한다고 했다.
3) 사단
단은 서가 아니라 시 또는 초이므로 측은지심 등 사단지심은 인의 예 지 등 사덕의 단시일 뿐이라 했다.
3. 정치사상
1) 왕도론
유가의 왕도를 목민지도로 정립하고 수기치인의 전인적 목자상을 정립했다.
목인지도를 자덕으로 애민, 양민, 교민, 휼민하는 정치이념이다.
그러므로 목민자의 윤리는 충효와 같은 상향성 윤리가 아니라 하향성 윤리라 했다.
2) 예악론
예와 악은 상대적으로서, 예란 육신의 근육과 골격을 구속하므로 사람의 방종 안일을 방지하고 악은 혈액을 활발히 유통시켜 병을 풀어준다고 했다.
3) 기현론
목민관으로 목자는 왕정을 대형하는 통치자로서 현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인은 뽑기 위해 창설된 과거제도의 폐단을 바로 잡기 위해 일대혁신을 요구하며 보완책으로 추천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4. 경제사상
1) 중농정책
목민관은 권농을 으뜸가는 임무를 삼고, 전정과 군정기에 치중하여 병일치를 근간으로 하는 중농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토지 소유는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국가 또는 경작자 이외의 지주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2) 전론
경제정책의 핵심인 토지제도를 여전론으로 정리를 했다.
여전론은 균정론, 한전론, 양전론 등의 결합으로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시도했다.
3) 조세론
세제는 여전제에다가 고대 정전법에 따른 구일 세법의 도입을 원칙으로 했다.
세곡의 근본적인 개혁책으로 금납제도릐 전황과 군포제도를 전청제도로 바꿀 것을 제의했다.
4) 화폐론
물납제에서 금납제의 전황시도로 화폐제도의 정비는 필수적 요건이므로 전화서의 설치를 제안했다.
5) 광산론
전폐제도의 시행에 따른 주화의 수요를 넓히기 위해 금 은 동 철의 재취는 필수적 사업이라고 했다.
불순기업의 사채를 방지하고 국가통제에 따른 관영만을 인정했다.
5. 결 론
다산 정약용의 사상은 전환기에 있어 근대 지향적 개혁정신이었다.
그는 사농공상의 4계급에 대한 직업적 평등관에 입각하여 계급적 위계를 철폐하는 사상이었다.
결국, 다산의 사상은 전통적인 송대 정주학에서 이탈한 독자적 위상을 정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