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사상의 특징과 종교성
1. 유교사상의 특징
유교는 공자의 사상의 배경으로서, 인간관, 세계관 등이 함유하고 있으며, 은주시대(殷周時代)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공자는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고, 天 또는 천명에 신념과 외경심을 표시하였으며, 천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그 뜻을 행하는 궁극적 존재로 묘사하고, 인간은 천의 뜻에 따르는 도덕성과 역사의식의 근거를 천명사상에 두고 있다.
공자의 사상은 은대의 상고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문화와 주대의 합리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예제 문화를 거쳐서 이를 배경으로서 하여 성립된 초인간적인 형이상학적 요소와 현실의 사회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견실성을 볼 수 있다.
공자의 인간관의 핵심은 인사상(仁思想)으로서 인은 인간의 본질이며, 본연의 삶의 그 자체인 것이다.
유교는 일반적으로 윤리도덕의 규범을 강조하는 동시에 종교적, 철학적, 예술적, 윤리적, 교육적, 정치적, 법률적, 제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을 본질적으로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는 종합적이며 총체적이지만, 특정 학문분야로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유교의 종교성
유교를 종교적 측면에서 그 내용은, 경전사상에서 볼 수 있으며, 은주시대에 걸쳐서 숭앙의 대상이었던 상제와 천은 시경, 서경, 오경 속에서 볼 수 있다.
상제와 천에 대한 신앙이 상고에서는 유사하였으며, 주대에서 천사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상제와 천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전환은 공자에 이르러서이며, 공자는 천의 권위에 대한 손상도 없이 천명사상을 통해 신성성과 구주성을 인간에게 내재시켰다.
공자는 천에 대한 무한한 외경심을 보여줌으로써, 천의 존엄성을 결단코 비하시키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하늘의 문제를 인간의 삶의 형태 속에서 수렴시키고, 인간 행위를 떠나 별도로 상념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지 않았다.
천명에 대한 응답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일체의 종교의식 또는 제의는 경천 행위의 강조이며 강화를 위한 단합이었다.
공자는 체제나 교사 지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사를 중요시하였으며, 제사로서 나타나는 제의는 기본적으로 윤리적이며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교의 근본 사상은 인간의 삶이 외형적 형태적 관계에 국한되고, 현세에 있어 인간의 삶을 충실하는데 강조하며, 내세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공자는 초인간적인 존재나 내세의 삶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표 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수도하는 스스로 도리를 다할 뿐이지, 내세의 영원한 삶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실존적 깊이를 가지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느냐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이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인간다움으로써 도와의 일치가 궁극적 목적으로 하였다.
공자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였으며, 인간 생명은 인격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성취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스스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평화와 행복을 성취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관계는 인격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며, 인격적인 관계가 일탈된 상태에서는 인간관계가 완전히 정립될 수 없다고 하였다.
참된 인간관계는 사랑과 존경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관계는 조건적이고 비 본래적이며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이며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는 상업 정신으로 전략한다는 것이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 객관적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세에 살아 있는 이들의 진실성이 문제라고 했다.
살아 있는 부모형제에 대해 애경 심을 가지는 것과 같이 죽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있는 이 섬기기와 같이 하고 내가 직접 제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효도는 조상뿐만 아니라 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숭앙심으로 승화되는 것이므로 유교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였다.
유교의 교화 방법은 경전 중심으로 할 뿐, 어떤 종교적 교리를 만들어 신앙의 방식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들지 않았으며, 민간인가 구별하여 예배를 주관하는 승려나 사제를 두지 않았다.
공자와 제자들은 성현을 제향하고 기념하는 성소로서 대성전과 같은 태학과 향교를 설치하여 성현을 추모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터전으로서 서원을 세웠다.
이는 종교적 사원이나 집단적으로 예배하기 위한 종교적 조직체라 할 수 없었으며, 다만, 유교의 정신을 숭앙하고 계승 발전시키는데 한몫을 차지했었다.
성균관과 향교는 국. 공립이고, 서원은 사립기관으로서 그 운영은 선비에 의해서 운영되었으며, 사제나 승려와 같은 일정한 신분을 가지지 않았다.
유교는 혼인도 하고, 평상인으로서 생활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범상한 생활 자체를 중시하고 고양시키고자 했다.
유교는 인간의 순수 정신적인 세계를 존중하고 인간의 삼성적 요소와 삶의 현장을 중요성을 인정하고, 잘못되지 않게 주의하며, 부정을 금지하며 알맞은 상태를 조절하여 중화를 다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순수 정신의 확립과 감정의 순화로 인격 주체를 이루고,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성취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민생을 보양하고 교화를 위한 기반으로 인도주의 국가의 건설과 기강과 질서를 세우고 인륜을 가르치며 의식주를 제공하기 위하여 행전 체제를 세웠다는 것이다.
공자 스스로 도를 행하고자 철환천하 하였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향리로 돌아와서 도를 밝히고 인제를 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