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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유럽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을 정복한 고대의 인물로서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왕,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의 왕이 되면서,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정복의 역사는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허구적인 전설이냐, 실체이냐에 대한 사실적인 편견과 평가에 대한 실증적인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어머니 올림피아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어머니는 에피로스의 공주이었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그가 태어나기 전에 태몽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그 번개가 배를 때렸으며, 불길이 온 세상으로 번져나갔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러한 꿈의 해석은 알렉산드로스는 인간이 아닌 제우스신의 아들로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되자 어머니는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버티어 나갔으며,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보답하듯이 비범한 유념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들에게 아버지를 항상 조심하라고 하며 아버지가 칭찬을 하는 것은, 질투와 권력을 위해서라며 경고를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후계자로 삼기로 결심하여 서양학문에 토대를 세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선택하여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는 “나의 아버지는 내게 생명을 주었지만, 스승은 내게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 부자의 인연을 갈라놓은 사건은 아버지가 순수 혈통을 강조한 나머지 새로 장가를 가게 되자 혈통문제로 결혼식장에서 부자지간의 싸움이 벌어져서 아들은 어머니의 고향으로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후, 아버지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암살을 당하자 알렉산드로스는 20세에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위협이 될 모든 경쟁자들을 처단하였다.

그는 22살에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여 페르시아를 겨냥한 동방 원정의 첫발을 내딛으며, 오늘날의 터키, 남쪽으로 이집트, 동쪽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서부에 이르는 원정을 하였다.

 

첫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그에게 소아시아 연안의 도시들은 싸우지 않고 귀순하였으나, 저항 하는 도시들은 철저하게 파괴를 하여 페르시아와의 첫 전투에서 성공한 그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기원전 333년 다레이오스의 60만 명의 대군과의 전투에서 그는 병사들 앞에 희망의 연설을 하였다.

“적군은 허수아비이므로 의지로 싸우지 않고 보수 때문이며, 싸우는 이유를 모르는 노예이다. 우리는 그리스인 대의를 위대한 이념을 위해 싸우며,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심어줄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신의 명령이라고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연설로 이 전쟁은 자유인 대 노예의 싸움으로 하게 되자, 그의 전술에 당황한 다레이오스는 싸움을 포기 하고 도주를 하게 되어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치어 전투에서 승리를 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남쪽을 향해 내려가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거쳐서 이집트까지 정복하게 되자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다스리는 정복자가 되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렸다.

그의 원정은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백전백승의 탁월한 전술로서 승리의 비법은 포용정책과 공포의 정책을 동시에 발휘하였다.

그는 전투에서 이기는 전술은 타협안을 제시하고 동맹을 맺고자 설득과 협상을 하며, 공손하고 품격 있게 상대를 대하고, 포로들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면, 처참하게 짓밟으며 싸우지 않을 때는 예의와 관대함으로 무장하며, 싸울 때는 포용 정책과 공포 정책을 상대를 대하면서, 자신 스스로 신격화, 영웅화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12년의 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어린 시절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였으며, 동방 원정 시절의 부관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이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자, 그는 3일동안식사도 하지 않고 비탄에 빠져 폭음으로 생활을 하였다.

페리시아 전투

이 후, 기원전 323년 강에서 수영하다가 감기에 걸려서 12일 동안 지속되다가 33세의 나이로 사망을 하였다.

그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후계자를 “가장 강한 자에게 주라”고 했지만 끝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였다.

그가 죽은 이 후에 그가 통치했던 그리스 제국은 40여 년간을 분열되어 싸움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