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즐거움과 행복에 관하여!
1. 즐거움
즐거움은 사람과의 긴밀한 관계로서, 삶의 전체로서, 즐거움을 선택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피하므로 행복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즐거움을 좋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쁘다고 하거나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하는 삶들은, 어떤 특정 즐거움을 추구하다가 대부분은 좋은 즐거움도 있고 나쁜 즐거움도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이 좋은 이유는 이성을 지닌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모든 존재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에서 선택한다면 훌륭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은 모든 것에 좋고, 모든 것을 추구하므로 좋은 것이다.
즐거움의 생성은 아무렇게 생기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것에서 생기고, 사멸하면 그것이 다시 그 특정한 것으로 돌아가는데, 즐거움을 생성해낸 것이 사멸하면 그것이 곧 고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체의 충족에서는 즐거움을 느끼고, 신체의 결핍에서 고통을 느끼다가 충족되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즐거움은 다 좋음도 아니고, 선택할 만한 것도 아니므로 어떤 즐거움과는 종류도 다르고 출처도 달라 그 자체도 선택할 만하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즐거움은 자신의 완성하는 활동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활동에 고유한 즐거움은 그 활동을 강하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그 활동의 고유한 즐거움이 온다는 것이다.
어떤 활동의 고유한 즐거움은 그 활동을 더 정확하게 지속적으로 잘하게 하지만, 그 활동에 이질적인 즐거움에는 그 활동의 고통으로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활동 안에 있는 즐거움은 그것을 바라는 욕구보다 그 활동에 더 고유하므로 욕구는 시간적으로 본성적인 활동과 분리되어 있지만, 즐거움은 활동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붙어 있어, 활동과 즐거움이 같다는 것이다.
2. 행복
행복은 사람들의 고유한 목적이며, 성품이 아니고 어떤 활동으로서 그 자체로 선택할 만한 활동 중 하나이고, 그 자체로 충분하고 결핍된 것이 전혀 없는 미덕에 따른 행위로써의 활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자들의 활동이라고 해서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며 훌륭한 활동을 하게 하는 미덕과 지성은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복한 삶은 미덕에 따른 삶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삶은 놀이를 즐기는 삶이 아니라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복은 놀이 같은 신체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미덕에 따른 지속적인 관조적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여유로운 삶에 있는 것은,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며, 이는 마치 전쟁을 하는 것이 평화롭게 살기 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지성적인 활동이 일생에 걸쳐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이런 활동은 인간으로서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삶에 도달할 수 없으며 어떤 신적인 것이 인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은, 신적인 것이 혼과 신체의 복합물로서 인간적인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사람들의 모든 활동은 신체로부터 생기며 도덕적인 미덕은 감정과 깊이 연루되어 있고, 실천적 지혜는 도덕적 미덕과 연결되어 있고 도덕적 미덕은 실천적 미덕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철학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며, 그런 사람이 누구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