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사상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정치철학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정치철학

목차

1. 어린 시절

2. 정치철학

1. 어린 시절

소크라테스(socrates)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BC469년경에 석공인 조각가 아버지 소 프로니스 쿠스와 산파인 어머니 파에 나레 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사물의 의미를 탐구하였으나, 아버지는 12, 13세 때에 하교를 그만두게 하였다.

그는 할아버지부터 대를 이어오며 사용한 석공의 연장들을 아버지로부터 잘 다루는 것을 배웠으나, 그의 아버지는 1년도 채 안되어서 아들이 훌륭한 석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판단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나서 질문을 하는데 취미를 가졌으며, 성인이 되면서 토론에 참가하여 특이한 방식으로 말하면서, 질문에서 또 다른 질문으로 전개시켜서 말하는 사람은 생각의 모순과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는 성장하면서, 노천극장에서 영웅들에 관한 비극 등 아테네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의 풍부한 지혜와 상상력과 기지가 넘치는 연극 구경을 잘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고 매혹시키는 신비로운 언어능력, 강인한 행동력, 심원한 내면의 세계 등을 가춘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육체적 욕망이나 이기심과 기백이 강하였으나 어느 순간에 특정한 계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관점의 대전환이 일어나서 큰 깨달음을 얻는 혁명적인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였다.

그는 가업의 승계를 포기하고, 생산적인 활동 대신 비생산적인 학문과 교양을 추구하여 인생의 행로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소크라테스

2.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대한 실체는 무엇인지 현대까지 학술 논저나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제공한 문헌적 근거들로 하여 대체적으로 파악할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존재한 인물이었으나, 그 존재성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므로, 필자는 여러 문헌을 통하여 나름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그는 희랍 세계에서 못 생긴 사람이지만, 유명하게 된 인물인 것은, 못 생김에 내재한 잘 남으로, 모름을 앎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는 개인적인 “다이모 니온” 신에게 자신의 정신적으로 인도하는 영적 존재를 고백하는 신비적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는 지식의 출현은 아테네의 민주화 시대 및 소피스트 운동의 시대라는 역사적, 지성사적 상황의 산물로서,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로 발전하게 되는 외적 계기이며, 민주화 시대의 아테네 정치 및 소피스트 운동에 대한 비판자가 되었다.

그는 나이 70세에 국사범으로 기소되어 처형을 당하는 최초의 지식인으로서, 국가 생활의 문제, 인간의 삶의 방식, 도덕성의 문제 등 앎의 대상으로 추구한 최초의 정치철학자인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의 내용은 포괄성, 체계성, 창의성 등에 대하여 정치철학자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있으나, 그의 철학은 체계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원초적 형태로서 완숙한 형태가 아니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이상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고, 아테네에서 민주정치의 이상이 나름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

즉,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이나 평등이라는 이름의 오만이 횡횡하는 민주정치를 비판한 것이었다.

그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떤 신적이며 영적인 존재가 자신이 좋지 않거나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마다 행동을 억제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생동안 처음으로 관직을 맡은 것은 민회의 사무를 관장하는 상임위원회에서 한 달 임기의 의장직을 수행할 때에 민회의 결정에 혼자만 반대하여 불복한 행동에 대하여 민회의 시민들은 다수가 그를 호응을 하였다.

그는 투옥이나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의에 저항하였으며, 죽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을 하고 실천에 옮긴 인물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탈옥을 하지 않고 사형집행을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표명한 것은 특정한 법의 규정이 나쁘거나 정의에 어긋나더라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아니었다.

그의 정치철학의 태동은 소피스트들의 인문학 및 수사학 이념에 대한 비판적 극복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그는 스스로 모름과 모자람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들과 아테네 국가 전체가 자각하지 못하는 모름과 모자람을 깨닫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지적 등의 역할을 수행 하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런 저술도 남기지 않은 이유는 인간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삶을 즐기느라 저술 작업에 몰두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의 영혼을 성장시키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는 대화라는 행위를 통한 깨달음으로 충분하다는 확신 때문에 저술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 싶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