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왕도정치
맹자는 기원전 372년 현재의 산동성 추현에 태어나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 밑에서 공부했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시대의 난제에 적용했으며, 공자처럼 왕들에게 조언하며 방랑하던 철학자였다.
그는 대학, 중용, 논어 등과 함께 유가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사서” 가운데 하나이며, 그는 중도를 걸었으며, 고대의 관습과 중국의 전통을 옹호한 동시에 계몽적인 통치를 추구했다.
4세기 중국의 봉건제도는 행정 구역별로 분할되는 중앙집권적 정부로서, 정부의 권력이 커지면서 전쟁도 많아졌다.
은 왕조와 같은 강대국들은 “하늘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세력을 넓혀 나가자 하늘의 뜻은 지배 세력이 강직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더 정당화된 권력을 가진 국가가 차지한다고 했다.
그의 관점에서 법가의 권력 지상주의의 법치주의는 윤리 철학이 아니며, 인간이 오직 사용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는 개념에 입각하고 있어 충분치 않다고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국가는 자비를 통해 승리하지만, 탐욕과 잔혹성을 통해 패하며, 도덕적 권위는 항상 강압과 폭력을 억누르면 승리한다고 했다.
도덕의 변화하는 영향력을 통해 자비를 베푸는 자가 진정한 왕이 되면, 왕의 성공은 국가의 크기에 달려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유교의 인은 자비와 선량함으로써, 인류애를 의미하고, 의는 특정 상황에서 올바른 일을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인간 본성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강조하면서 공자를 넘어섰으며, 인간은 그저 욕망(음식, 섹스 등) 이끌린다는 관점도 있지만, 그는 오직 단순하거나 도량이 작은 인간만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했다.
위대한 사람은 본능보다는 마음 또는 이성을 우선하므로 인간은 동물과 구분된다고 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관점은 자연스럽게 자애로운 왕의 개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남의 고통에 측은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므로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연민 어린 통치할 때 천하를 손바닥 위에 굴리듯 쉽게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사회적인 조화에 가치를 두었고 사람들 간의 적합한 관계를 언급했다.
결국, 맹자는 왕도정치를 통한 민심 획득이 백성을 중요시하는 최고의 정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