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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 혁신정당의 근원

혁신정당

한국 혁신정당의 근원

 

한국의 혁신정당은 미 군정기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당으로 발전하여 변천된 조선인민당-사회노동당-근로인민당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당들은 계획경제 확립으로 전 민족의 완전한 해방 등을 정강. 정책으로 내세웠으나 냉전과 분단의 고정화와 여운형의 피살로 이 정당들은 분산 소멸되었다.

19552월 전 진한의 중심으로 노동당이 창당되었으며, 1959년 민족주의 민주사회당으로 개칭되었다.

 

19561110일 조봉암, 바기출 등이 진보당을 창당했으며, 195710월 서상일 등이 민주혁신당을 창당하는 등 혁신계 정당이 뒤를 이어 창당되었다.

이들 정당은 수많은 군소정당 중의 하나로서 책임 있는 혁신정치와 계획경제 체제의 추구 등 보수 야당의 이념보다 진보적인 이념을 표방했다.

19565월 진보당은 정. 부통령선거에서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은 낙선했지만, 2613,808표를 획득했다.

 

19606월 민주혁신당계인 한국 사회당, 196011월 진보당계인 김달호 중심으로 사회대중당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제2공화국이 단명으로 끝나자 여러 혁신정당은 소멸되었다.

3공화국에 19657월 김성숙, 김철 등 통일사회당을 창당하여 민주사회주의와 국민의 자유를 보장 등을 표방했으나 19737월 등록이 취소되었다.

19665월 창설된 민주사회당이 19673월 서민호, 이필선 중심으로 대중당으로 당명을 바꾸었으나, 19736월에 해산됨으로써, 한국의 혁신정당은 침체되었다.

 

한국의 혁신정당은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19813월 사회당, 19823월 신정사회당, 19854월 한국 사회당, 19865월 사회민주당 등이 창당되었지만, 군소정당으로 원내 의석조차 확보하기 힘든 정당으로 존재하다가 소멸되었다.

한국의 혁신정당은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국민의 정치참여가 구조적으로 이원화 되어 있어 이념적 제약을 크게 받고있는 혁신정당의 존재는 어려운 정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