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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길러드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

길러드(Gillard)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는, 1931년 영국으로부터 완전자치 승인을 받아서, 1986년에 헌법을 제정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으며, 지방분권제의 발달로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로 권한이 분산되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 총리인 줄리어 길러드(Julia Gillard)는, 1961년 9월 29일 영국 웨일스 배리에서 태어나서 5살 때에 부모님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길러드 총리

그는 멜버른대학 시절부터 진보성향의 “소셜리트 포럼” 사무총장을 하면서, 졸업 후에는 변호사 로펌에서 노동자 권익과 여성들의 인권을 위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 후, 그는 노동당 소속 연방의회 하원의원이 되면서, 예비내각의 고용노사관계부 장관을 하였으며, 노동당 대표를 하였으며, 2013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이민자로서 여성 총리로서 지도자가 되었다.

2010년 타임(TIME)지가 선정한 “세계여성 지도자 10”에 선정되었으나,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야당으로부터 부도덕한 지도자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길러드와 오바마

그는 자신의 혼전 동거를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 행동에 국민들은 존경을 받았으며, 사회적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상징적인 총리가 되었고, 자신의 사회생활의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는 정면으로 솔직한 언행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하는 정치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의 정치적인 리더십은 모든 일은 생각과 판단이 섰을 경우에는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듯이 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자인 것이었다.

그의 총리시절의 승부사적 정치적 리더십은 오히려 많은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었으며, 노동당과 보수 연립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지 못해서 군소정당과 무소속과의 연대해야 하는 “형 의회(Hung Parliament)”의 상황이 되어도 연정에 막힘이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지도자였다.

그의 정치적 리더십은 “한 지붕 다섯 가족” 꾸리는데 성공하는 자신감 있는 모습은 모든 국민들을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하고 분명한 연정을 실시하는데 믿음을 주었다.

그는 위험한 기회를 성공할 수 있는 전환을 시키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걸고 신임투표를 하자고 하며,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다.

2013년 최초의 여성총리인 길러드는 노동당 당권경쟁에서 켈빈 러드 전 총리에게 패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정치생명을 끊어놓게 되어버리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배신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것은 거짓말과 배신의 정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정치적 위기를 자신의 성공의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정치적 승부수를 내 걸었으나 강력한 극단적인 승부수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끊게 되는 경험을 한 정치지도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 총리 러드 와의 당권경쟁에서 절대로 출마를 하지 않겠다며 충성 명세까지 하면서, 상대방을 안심을 시킨 후, 방심하도록 하는 사이에, 어제 한 말을 뒤집고 당권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러드 전 총리는 너무 방심하여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권을 포기선언을 하며 물러났던 것이었다.

길러드 총리

총리가 된 길러드는 G20 서울 정상회의 시에도 전 세계적인 경제회복과 고용창출을 위해 다른 회원국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보호무역주의와 글로벌 경제성장을 초래할 경제통상정책을 배제하고 국제 통화기금(IMF)을 통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강화하려는 G20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노동당 정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야당연합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생각에서 반대표를 던져서 자유당 대표가 이끄는 야당연합인 자유당과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하여 정권을 자지 하도록 하였다.

결국, 자유당은 6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자마자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탄소세는 폐지하겠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