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Goya)의 생애와 작품
1. 생애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a de Goya)는 1746년 스페인 동북부 아리곤 지방의 푸 엔데르 도스라는 시골마을에서 도금장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가톨릭 수도원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4살 때에 종교화화가인 호세 루산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1770년 24살 때에 이탈리아 유학을 가서 로마에 머물면서, 파르마 아카데미에 경연대회에 역사화를 출연했지만, 당선되지는 않아도 좋은 평을 받자 용기를 가지고 사라고로 다시 돌아왔다.
1773년 호세파 바예우와 결혼을 하여 종교화를 그리다가, 1774년 말에 왕립 태피스트리 공작의 부름을 받고, 마드리드에서 처음으로 궁궐 방안의 벽을 덮을 태피스트리들의 실물 크기의 밑그림(carton)을 그리게 되었다.
건물 벽을 덮을 밑그림의 내용은 사냥, 투우와 같은 계절별 풍속, 시골 풍경과 도시 풍경 등을 그리었다.
1780년 왕립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789년에는 궁정화가가 되어 왕족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성당의 벽화작업을 하면서도 밑그림을 그리었다.
1775년부터 1792년까지 그는 밑그림을 63점이나 그리면서, 과로에 시달리다가, 1793년 휴가로 세비야를 여행하는 도중에 중병에 걸려 키디스에 있는 후원자 집에 요양하던 중에 47세에 청력을 상실하여 평생을 귀머거리 화가로 살았다.
그는 1828년 사망하기까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온 고전적 전통 화가를 마감하고, 근대적 예술가의 화가로서 역사가 이루게 하였다.
2. 고야의 작품 “벌거벗은 마하”
그의 작품인 “마하” 누드의 작품은 정면으로 누워 있어, 여성의 아름다운 육체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세속적인 누드인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집시‘라고 부르다가 1815년 종교재판소가 압류했을 때에 ”마하’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다.
작품 화면의 그녀는 성기를 가장 잘 보이도록 정면에 보이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고 부끄럼 없이 관람자들을 향하여 정면으로 바라보는 관능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은 고야의 애인이었던 알바 공작부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애인의 아름다운 육체를 벌거벗은 몸매와 옷을 입은 상태의 두 작품을 남겼다.
그의 두 작품은 같은 인물의 여인으로서 같은 위치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모두 동일 하지만, 옷을 입은 것과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보여주는 모습의 차이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은 인간의 내면의 순수한 감정을 자연그대로 아름다움의 본성을 보이는 것과 옷을 걸친 인간의 표면적인 가식의 장식으로 인간 본성을 숨겨놓은 두 작품을 비교하여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