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Paul Gauquin)의 생애와 작품
1. 생애
폴 고갱(Paul Gauquin)은 1848년 6월 7일에 프랑스혁명(1848, 2) 후의 공화정치의 혼란기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르나시오날”의 정치부 지자였으나, 페루로 가는 여객선에서 심장병으로 사망을 하자, 그의 어린 시절에는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가정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자, 그는 1865년 사관후보생이 되어 상선을 타고 라틴아메리카와 북극 등을 여행을 하였다.
그는 1872년 어머니가 사망을 하자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증권거래소의 점원생활을 하면서, 1873년 덴마크 여성 메테 소피 가트와 결혼을 하여 경제적으로 윤택하여졌으며, 그는 이때부터 회화에 흥미를 느껴서 인상파 작품을 수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1876년 처음으로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 후, 1880년 제5회 인상파전 후로 단골 멤버가 되면서, 1883년 35세 때에 증권거래 점을 그만두고 그림에 전념을 하였다.
1887년 그는 남대서양 마르티니크 섬 등을 여행을 하다가 파리로 돌아와서 고흐와 같이 프랑스의 아를에서 “노란 집” 화실에서 살았다.
1889년 황색의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완성하였으며, 1891년 마타이 섬에 정착하면서 원주민 테후라와 동거하면서 “아베 마리아” 등의 작품을 완성을 하였다.
1893년 파리로 와서 원시적 아름다움을 전시회, 책 집필 등을 하였으나 선공하지 못하여 다시 남태평양으로 떠났다가, 1897년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을 시도하면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를 제작하였으며, 그는 1903년 5월 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2. 작품 “이아 오라나 마리아”
폴 고갱의 “이아 오라나 마리아”의 작품을 보았을 때에 느낌은 남대서양의 이국적인 환상의 세계를 작가는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상파의 세계와 너무나 다르게 화려하고 풍성한 색채로 아름다운 여인의 세 사람과 여인의 등 어깨에 태운 아이의 모습과 주위의 수목과 꽃, 풀들과 나무, 바나나와 나무 사이의 오두막까지 명확한 형태와 강한 색채로 화면 가득히 채웠다는 작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특히, 두 여인의 위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듯이 한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본래의 본성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밝은 빛과 맑은 공기, 자연과 함께 넓게 펼쳐진 공간을 이국적으로 남국의 그리움을 토속적이고 소박한 화려함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이 작품에서 우리가 숨은 그림 찾듯이 상의 옷을 벗은 두 여인의 더 뒤쪽에 꽃과 그늘에 가려진 인물이 한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각각의 인물들의 의미를 쉽게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 작품의 의미의 고갱 자신이 작품의 아래 왼쪽에 직접 “이아 오라나 마리아 (IA ORANA MARIA)"라는 글씨를 보아서, 이것은 ”마리아여 우리는 당신에게 예배를 드립니다. “라는 뜻으로 타이티 말로, 기독교의 천사 축사 첫머리에 나오는 ”아베마리아“에 해당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남태평양 타이티 섬의 정경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기독교적인 의미를 넣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생각이 들은 것은 그는 그리운 타이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