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설화
1. 생애
강감찬 장군은 948~1031년 정종과 현종 때의 고려의 명신으로서, 왕건을 도운 삼한 벽산 공신인 궁진의 아들이었으며, 983년(성종 2) 과거에 갑과 장원으로 급제한 후, 예부시랑이 되었다.
그 후, 서경유수가 되어 군사 지휘권을 행사하여 걸란 침입에 대비하던 중에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하여 왔다.
그는 총사령관격인 상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과 함께 귀주 대첩에서 큰 승리를 했던 것은, 새끼줄로 쇠가죽을 꿰어 냇물을 막아 때를 맞추어 일시에 내려 보내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걸란 군은 대패하여 10만 대군이 전멸에 가까운 군의 생존자는 겨우 수천에 불과했으며, 이로 인하여 거란은 침약 야욕을 버리게 되어 고려와 평화적 국교가 성립되었다.
그는 추충협모안국 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1020년에 특진 검 교태부 천수현 개국자 식읍 오백호에 봉해진 뒤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2. 설화
1) 출생에 관한 일화
어느 날 밤 한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집을 찾아가자,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아기를 낳아서 기렸는데, 그가 강감찬이라고 하였다.
그 후, 송나라 사신이 와서 만나보고는 문곡성에 화신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2) 구전에 관한 설화
강감찬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을 기우린 끝에 길에서 만난 여우 여인과 관계를 맺어 강감찬을 낳았다고 했다.
3) 성장기의 일화
강감찬은 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큰일을 할 수 없다하여 스스로 마마 신을 불러 얼굴을 얽게 하여 추남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친구 딸 혼인식에 가는데 아들이 못생겨 데리고 가지 않았으나, 몰래 혼인식에 참석한 그는 사람으로 둔갑하여 신랑 행세를 하는 귀신을 퇴치한 비범함을 보였다고 한다.
4) 호랑이를 쫒은 설화
한성판윤으로 부임했을 때, 남산과 삼각산에 있는 수백 년 된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헤친다고 하는 민원이 있어, 그는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 크게 꾸짖고 앞으로 새끼를 평생에 한 번만 낫고 몇 군데 산에서 살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설화는 정사에는 기록이 없고 조선 말기에 “강시즁젼”에 작자 미상의 작품화한 고전소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