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관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민족주의이란?
국가의 지나간 과거에 대한 해석으로서 생명을 불어넣어 미래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해석을 사관이라 할 수 있으므로 역사의 사관은 매우 주요시된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사관은 사람에 따라 역사에 대한 해석이 비슷하거나 너무 주관적인 선입견이 될 수 없으며, 과거에 있는 그대로 찾으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사관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보고,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보는 식으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연관시키면서 주관적이고 객관적이 접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근대의 역사학인 민족주의 사관의 방법론은, 실증주의(랑케)의 방법론과 민족주의 역사학이며,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인 유물사관이다.
실증주의 방법론은 엄밀한 문헌고증을 통해서 개관적으로 역사를 탐구하였으며, 위리 나라의 경우의 민족주의 역사학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민족독립의식을 드높이며 발전하였다.
이경우의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진단학회를 이끈 이병도, 대종교도와 신채호 안재홍, 박은식 등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계급해방을 촉진시키고 사회 경제사를 촉발시키는데 기여했으며 선구적 학자로서는 일제 식민시대의 백남운이었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문제에서는 실증주의 역사학은 민족이나 계급 등 현실 문제 해결의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실천성이 미약하였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은 계급해방을 촉진시키며, 일제강점기의 사회경제 제사 연구에 기여하였다.(백남운)
그러나 실증주의 역사관은 민족이나 계급 등 현실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함으로써, 실천성이 매우 미약하므로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하는 방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해방 전후의 시기에는 한층 개방적인 신민족주의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신민족주의는 민족 내부에서 계급 평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외부적으로 배타성을 완화하여 국제적 민족주의로 전향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안재홍, 손진태, 이인영 등으로서, 한국의 역사학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었다.
다음은 유물사관으로서, 1920년대의 백남운 마르크스의 도식에 따라, 우리의 역사관을 원시 공산사회(고조선)에서 노예 사회(삼국시대)와 봉건사회(신라통일 이후)를 거쳐 이식 자본주의 사회(일제강점기)로 이행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유물관은 사회경제사 연구에 촉발시켰으나,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우리 역사의 발전을 무시하고, 최종적인 역사의 발전을 공산주의 사회로 끝난다는 것은 하나의 가상적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의 자주성에 따른 주체성과 창조력을 상실시키고 노예상태로 만들었으므로 자주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근대화란 있을 수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사관은 너무 멀리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해도 안 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미래의 사관을 가져야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