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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하이데거의 존재에 관하여!

하이데거의 존재에 관하여!

하이데거는 독일 서남부의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메스 키르히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여 사제가 되려 했으나,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919년 에드문트 후설의 조교를 하다가, 1923년 마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8년 후설의 후계자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나치 지지자로서 1933년부터 프라이부르크 총장직을 수행하였으나, 히틀러의 행적에 회의를 느껴서 1년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존재란, 무엇인가? 관하여 집요하게 존재문제를 파고들어 갔으며,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주저 ”존재와 시간“이었다.

예를 들면, 흔히 우리들이 개가 있다와 같이 뭔가가 있다고 말을 하지만, 과연 여기서 있다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있는 것이라는 현상, 다시 말해 존재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의 철학이 존재 문제를 잘못 다루어 왔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형이상학을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말하며, 존재자와 존재를 구분하였다.

 

존재자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를 말하며, 나무, 책상 등이 존재자이며, 존재는 존재자가 그렇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어떤 근거를 가리켰다.

그동안의 서양 형이상학은 있음(존재)을 있는 것과 구별하지 않았으며,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물은 본능만 충족되면 큰 불만을 품지 않지만, 인간은 본능이 충분히 충족되어 있어도 권태에 빠지거나 삶이 만족하지 못하면 삶에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족하지 못한 삶에 대하여 존재해야 하는지 대해 사색하고 고뇌하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인간만의 특성을 그는 실존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르며, 나는 세계와 섞이는 방식에 따라 매번 다르게 존재하며, 그때그때 세계와의 섞임에 의해 발현되는 나가 바로 현존재라고 했다.

즉, 실존이란, 인간이 삶에 대해 무의미함을 느꼈을 때 진정한 삶의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태도를 말하며, 현존재란, 세계와 만나는 각각의 국면에 따라 매번 다르게 나타나는 나 자신을 의미한다고 했다.

 

현존재는 각각 나 자신이 존재하는 독립체이며 현존재를 그냥 인간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했으며,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으며,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정치적인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항상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렇게 존재하므로 인간이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인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 현존재라고 했다.

인간의 현존재는 항상 다른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현존재는 세계와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하게 엮어져 있다고 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현존재 이자 실존으로서의 존재자이며, 이를 두고 그는 현존재의 본질은 실존에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우선은 얄팍하고 산만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대체로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경험보다 말초적인 본능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선호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말초적인 본능이 충족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대상을 찾기 마련이며, 더 자극적인 상황이나 사태를 계속 원한다고 했다.

이런 삶은 자기가 어떻게 존재 해야만 하는지 고뇌하지 않는 부평초와 같은 삶으로서, 인간 사이의 진지하지 못하며 잡담만 난무하며 지금 겪는 권태감이나 허무감이 신선한 자극이 없기 때문이라며 미친 듯이 계속 주위를 둘러본다는 것이다.

 

현존재는 실존하는 인간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권태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자극만을 찾는다고 했다.

인간으로서 현존재는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문제를 삼고 질문을 해야 하는데 모든 시대를 특유의 존재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 기술에서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에너지들의 집합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존재자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연구를 해야 그 시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대 과학 기술 분야의 인간 이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인간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외부 자연을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과학기술 만능주의 시대는 인간 본인도 일종의 에너지로 취급되어 상품화되고 있으며, 인간을 상품 가치로 환원 가능한 에너지로 바라볼 뿐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도 하나의 에너지 집합체로 간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