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Paine)의 인권 철학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나서, 필라델피 아로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독립전쟁에 참가하였다.
그 후, 프랑스혁명에 가담하여 투옥되었으며, 1809년 뉴욕에서 72세에 나이로 사망을 하였으며, 그의 저서는 상식론, 이성의 시대, 미국의 위기 등이 있다.
그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책을 출판하면서, 신성모독은 가혹한 형벌을 받는 시대에서 제도화된 종교를 공격했기 때문에 무신론자로 간주되었다.
그는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체계를 단순히 수용하기보다는 국가의 정책방향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싸움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으며, 그가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체제가 불평등을 야기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그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도화된 기독교의 위선과 불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을 하였으며, 군주제를 반대하였기 때문에 조국인 영국에서 떠나 다시 돌아 올 수가 없었다.
그는 프랑스의 인권선언을 지지하였으며, 영국의 혁명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면서 그를 파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왕의 지위에 부여된 권력은 비록 비교적 자비로운 개인이 그 지위를 차지한다 할지라도 악한 것이라 하였으며, 혁명은 인권의 결과로 일어나며, 특히, 평등과 정의의 권리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는 친구이자 동지인 철학자인 버크가 프랑스혁명과 그 혁명을 고취시킨 사상을 격렬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에 대해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버크의 책에서 “빛을 계몽시키려고 시도하는 어둠”이라는 책을 아주 평가절하였다.
그는 자연권이란, 생존권, 자신의 신념을 가질 권리,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권리 등이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권리라고 하였으며, 이런 권리가 사람들을 연합하여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자연권에 대하여서는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이러한 권리가 사람들의 존재방식을 결정하고 고양시킨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고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기 위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여야 하며, 정부는 강자의 착취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의 자연권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원천이므로 정부가 정책들을 통해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적인 복지를 보증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파격적인 노인연금, 결혼수당, 자선기금, 의무교육 등을 세금 징수를 통하여 재원을 조달하는 진보적인 정책과 제안들을 제시하였다.
그의 인권에 대한 비판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지나친 낙관주의라는 것이며, 이성에 의지해 사회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개인들이 기존의 토대가 없이 무로부터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