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Cameron)의 정치적 리더십 (전 영국 총리)
목차
1. 생애
2. 정치적 리더십
1. 생애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1966년 10월 9일 런던에서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를 하였다.
그는 캐머런 찰스 왕세자, 월리 암 해리 왕자와 함께 런던 상류층의 사교계모임인 하이츠 회원으로서, 월리엄 4세 왕의 직계 후손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먼 친척이 되었다.
1997년 총선거 시에 스태퍼드(stafford)에서 .보수당후보로 출마를 했으나 낙선하고, 2001년에 옥스퍼드 근처 위트니(Witney)에서 출마하여 하원의원에 당선이 되었다.
그 후, 2005년 39세에 보수당의 당수경선에서 승리하여 당수가 되자, 그는 당의 상징(엠블럼)을 파란 햇 불에서 녹색 나무로 바꾸어 신선한 의미를 상징하게 하였다.
보수당은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구성에 합의하여 총선거에서 1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198년 만의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 43세에 그는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
2010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을 제치고 제1당으로 성공했으나, 과반수과 안되어 헝 의회(Hug Parliament)가 되었다.
보수당은 1678년 창당한 토리당(Tory Party)의 전신이었으며, 보수당의 총리인 그는 젊고 역동적이면서 약자에게 동정 적린 이미지를 풍기는 친화형 지도자였다.
2. 정치적 리더십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총리가 된 그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자신감 넘치는 계산된 행동으로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는 멋진 모습은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는 충분하였다.
총선 거시에는 만삭이 된 부인을 유세장에서 함께 누비며 국민들에게 “국민의 표”를 호소하는 연설은 젊은 지도자의 멋진 모습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의 힘이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대처리즘(Thatclerism)적인 리더십으로 확실한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치이념으로 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켜, 1990년대 경제 호황을 가져오게 하여 강한 영국을 만든 정치지도자였다.
그의 정치적 리더십은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이념 스펙트럼을 넓게 가지고, 기업의 노조규제, 어린이 건강, 교육의 질, 노령 은퇴자의 빈곤문제 등 해결하는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정치적 리더십은 1998녀 이후, 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부분에서 구매 관리지수(PMI)를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감세정책으로 법인세율을 크게 낮추고, 보험료를 면제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그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핑퐁외교(Ping-Pong)로 상호협력과 동반자 역할을 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영국의 경제적 성장을 촉진시킨 정치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