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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중국 순자의 철학사상

순자

중국 순자의 철학사상

 

서언

 

순자는 기원전 298년에 오늘날 산시성에 해당하는 조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황()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록은 거의 없으나 15살에 고향에서 공부하였으나 수재로 일컬어졌다고 하며, 50살에 제나라로 유학 가로서 명성을 떨치는 사상가가 되었으며, 양왕은 순자를 스승으로 받들고 좨주라는 벼슬을 주어 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주어 세 번을 역임하도록 했다.

그는 상고시대 이래의 다종다양한 학풍을 두루 통달해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그러던 중 모함을 받아 제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의 재상 춘신군은 그를 난릉의 수령으로 임명했으나, 춘신군이 암살되자 그는 난릉 수령의 관직에서 은퇴하여 살면서,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가 60살에 사망했으며, 저서로는 순자” 32편을 남겼다.


2. 철학사상

 

중국의 유교는 공자에 의해 시발 되어, 맹자에 의해 더욱 세련되었으나, 순자는 맹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순자는 공자,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3대 철학자로 손꼽히며, 그의 철학은 맹자에 대항하여 성악설을 주장하여 공자, 맹자의 이상주의적인 유학의 전통에서 이단시 되었다.

공자와 맹자의 철학은 자연은 최고의 선이며, 인간은 본받아야 할 가치 규범의 근본이므로 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순자는 자연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며, 하늘은 어디까지나 자연으로서의 하늘뿐이며, 선악과 길흉화복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뿐이므로 인간은 하늘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늘을 높이 공경하는 것보다는 물건을 비축하고 이것을 잘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군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힘쓸 뿐, 하늘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나 소인은 자기의 재능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을 바란다고 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에 바라지 않고 자기에 있는 것을, 연마하기 때문에 날로 진보하고, 소인은 자기에 있는 것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날로 퇴보한다고 했다.

순자의 이러한 자연관은 인성론으로서 성악설이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인성론은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하면서, 나온 이론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이요, 선은 인위적이라 한 것은, 모든 인간이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란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이며, 그러한 본성은 악하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은 악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며, 이런 연유로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사회 속에서 제어해야 하고, 선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다스리고 수양하여 약을 제거되어야 성인에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성악설은 사회질서를 어떻게 마련하여 인간을 선하게 할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사람은 사회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람은 좀더 나은 생활하기 위해서는 협동해야 하며, 힘센 다른 짐승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회조직을 통해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는 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며, 이러한 예는 예법, 의식, 사회적 규범 등으로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규범이라고 했다.

예는 단순한 욕망 통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양하는 수단이 된다고 했다.

그는 예를 통해 욕망을 사회적으로 제어하도록 했고, 음악을 통해 욕망을 완화하고 마음의 수양을 통해 욕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공자가 인을 가장 중요한 덕으로서 강조했고, 맹자는 과 함께 나란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으나, 순자는 여기서 의 역할을 강조하여 공자, 맹자, 순자를 거치면서 유가 사상의 인, , 예가 중요한 3대 덕목으로 외었다.

그의 제자 중에 뛰어난 인물은 진시황의 정치 사상적 이론을 완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의 재상 이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