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사상
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 봉건사회의 동요를 배경으로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기치로 십자군원정(1096~1270)과 동방무역의 부활을 계기로 성장을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 내부의 개혁운동으로 시작하여, 가톨릭교회의 도덕적 부패를 의식한 체제 비판에서 정치적 체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르네상스가 그리스 로마의 전통으로 돌아감으로써,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로의 희귀를 통해 봉건사회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는 똑 같이 봉건사회의 붕괴를 이끌었다는 공통성은 있으나 두 운동의 내용과 성격은 정반대로 달랐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중심의 르네상스와 북유럽 중심의 종교개혁의 지역적 차이와 르네상스의 “만능인”의 이상과 종교개혁의 “직업인”의 이상은 후세에 서로 다른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
이는 르네상스는 피렌체를 전형으로 하는 상업적 도시국가에서 성장하여 대상인과 황후 귀족층을 경제 기반으로 특권적 체제를 유지하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
종교개혁 운동은 평범한 농민, 상인, 직업인의 광범위한 운동으로서 르네상스와 비교할 수 없는 사회학적 형성력을 가졌다.
2. 종교개혁 사상
종교개혁은 개인의 내면에서 우러난 정신의 변혁으로부터 생긴 역사적 사건이었다.
루터와 칼뱅 두 사람은 어떤 결정적인 개인적 체험(회심)에 의한 신과의 만남을 통해 개혁사상을 가졌으며, 둘의 사상이 종파로서 유럽을 양분하는 세력이 되어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 모두 신약과 구약성서 연구의 최대 수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제도를 근본으로 되물었으며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길을 추구했다.
구약성서(기원전 10~2세기)는 유대교의 성전이며, 그 원전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유대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기록한 민족 서사 시인이었다.
신약성서(1~2세기)는 원전은 그리스어로 쓰여 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록으로서 예수 사후에 제자들이 정리를 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에서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중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은 1) 구약성서 첫머리의 창세기에 나오는 유일한 절대 신에 의한 세계와 인간의 창조라는 사고방식이다.
즉, 전지전능한 신과 비교했을 때는 인간은 하찮음과 무가치성, 신 앞의 인간끼리의 평등성, 인류최초의 남녀의 이익과 위락을 위해 창조된 자연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이라는 인식이었다.
2) 창세기의 낙원(에덴동산)의 추방과 관련되어 아담과 하와는 물질적 부자유함이 없는 생활을 보내던 중에 하와가 뱀의 모습을 한 악마의 유혹에 금단의 과실을 먹고 신의 노여움으로 낙원에서 불모의 땅으로 추방되었다.
아담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주는 처벌을 부과했던 것은, 노동의 본질이 신의 처벌로서 괴롭고 고된 고통이라는 중대한 인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3) 원죄가 예수의 형사에 의해 속죄되었다고 하는 신약성서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신이 자연법칙과 상반되게 자유로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의 원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근본적 세계관이 융합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신 앞에서의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을 제세할 수 있었다.
루터와 칼뱅은 자유와 공공성의 복잡한 관련성이 있었으나,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덕이라는 정치적 공공성의 개념으로 결합시키려고 했다.
종교개혁의 사상에는 세속적 공공성의 의식적인 정당론이 부족하였으나, 루터는 이웃 사랑에 의한 세속적 직업의 도덕적 긍정이나 칼뱅의 자본주의 정신의 성립은 모두 종교개혁 사상으로 귀결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시장경제가 형성하는 사회적 질서는 가치를 가지지 못했으며, 시민의 덕과 맞서지 않았다.
결국, 루터에 의한 직업 관념의 확립이나 칼뱅의 자유로운 영리 활동은 근대사회의 새로운 경제적 질서는 종교적 의미에서 긍정되었다.
근대에서의 자유와 공공성의 관련을 종교영역 외부에서 정치와 도덕과 경제는 종교개혁 이후에 사회사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승해 나갔다.
3. 종교개혁 사상의 자유와 공공(결론)
근대 자유에 관하여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로서 정치지도자는 덕의 확립이 사상과제였으나, 루터와 칼뱅의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자유이었다.
결론적으로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종교로부터의 자립을 자유로운 공화국의 실현을 추구를 했다.
루터와 칼뱅은 그리스도교의 원점회귀에 의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로마 교회로부터 자립과 해방을 추구했다.
두 사상운동은 결과적으로 로마교회를 정신적 지주로 하는 중세사회의 질서를 해체했으며, 정치와 종교라는 별개의 방법으로 근대적 공공세계의 현성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