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삶의 의미
1. 서언
밀은 종교의 유용성의 서두에서, 만약 종교 혹은 그것의 어떤 특수한 형태라도, 그것이 진리이기만 하면, 그것의 유용성은 다른 증명 없어도 따라 나온다고 주장했다.
만약, 어떤 사물의 질서, 어떤 우주의 통치 형태 아래 사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지 확실하게 아는 일이 유용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을 유용하다고 여길 수 있을지 생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2. 삶의 의미
밀은 종교의 진리에 반대되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으며, 진리 문제와 별개로 단지 설득력만 고려했을 때 종교적인 믿음은 어떤 점이 좋은 것인가? 했다.
그의 공리주의적 개념 틀을 고려할 때, 그 자체로 바람직한 유일한 목적은 행복 혹은 복지라고 했다.
그는 진리 문제와 별개로 단지 설득력만 고려했을 때, 종교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그러한가를 물었다.
그는 이 측면에서 종교에 대한 믿음에 어떤 사회적 이득이 있을 수 있는지, 종교가 개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관점에서 종교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여러 가지 제안을 거부하고, 개인에 대한 종교의 유용성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측면이 있다고 제안했다.
인간의 짧은 삶, 우주적 하찮음, 삶에 수반되는 실망과 고통 등 세속적 삶의 많은 결함과 단점 때문에, 인간은 더 높은 것을, 향한 갈망이 존재한다고 했으며, 이러한 갈망의 만족은 개인의 행복에 결정적이며, 인간의 실존적 좌절이나 공허의 경험으로 고통받는 것을 막아 준다고 했다.
인간이 평범한 삶에서 구현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는 사유와 감정의 함양,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 누리는 번영하는 삶의 충분히 행복한 삶의 본질적 요소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갈망이 종교에서 가장 분명한 만족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종교가 인간의 행복이나 복지에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밀의 공리주의 윤리에 따르면,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은, 오로지 행복뿐이며, 이러한 행복은 모든 실천적 혹은 규범적 이유의 원천이라고 했다.
인간이 더 높은 것을 향한 갈망이 종교보다 더 잘,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면, 개인의 행복이나 복지에 더 많이 이바지하는 것으로서, 인간 삶에서 종교적 믿음보다 그 대안이 함양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갖는다고 했다.
인간이 더 높은 것들을 향한 갈망이 실제로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인본주의에서도 충족될 수 있다고 해도 인본주의가 그 갈망을 더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다는 생각할 어떤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종교와 대비되는 인본주의의 한 가지 장점은, 일차적으로 자신만의 이득을 위한 관심에서 비롯된 대상과 일체가 되려는 어떤 유혹에서도 자유롭다고 했다.
그는 인간 자신을 전체로서의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더 높은 것들에 대한 갈망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고 했다.
역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국에 관련된 신념으로부터, 자기 삶의 의미나 목적을 획득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일본주의를 함양하는 목적은 개개의 사람들에게 인류 전체의 이익을 바라는 배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를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일을 하건, 인류의 이익이 인간의 유일한 동기, 목표 혹은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본주의는 개체성과 양립할 것으로 기대될 뿐만 아니라 개체성을 장려한다고 주장을 했다.
삶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 대상과 일체가 되는 어떤 유혹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본주의는 종교와 대조적으로 인간이 현재 거주하는 세계처럼 불완전한 피조물의 창조자이자 통치자로 되어 있는 완벽한 존재에 대한, 지적으로 혼란스러운 그 어떤 믿음에도 매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밀은 행복은 모든 규범적 이유의 원천을 이루며 더 높은 것들을 향한 갈망의 충족이 행복한 삶에 결정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보다 인본주의을 함양해야 더 강력한 이유가 존재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