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陰陽五行) 설이란 무엇인가?
음양오행설은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으로서, 원래 음양설과 오행설이 독립되어 있었으나, 서기전 4세기 초 전국시대에 결합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제나라의 추연이 체계적으로 결합시켰다고 하나 입증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나 두 관점이 하나의 정합적인 이론으로 통합되었다.
어원적으로 음과 양은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고, 음의 글자는 언덕과 구름의 상형이 포함되어 있고, 양의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이 상징되어 있다.
결국, 음은 여성적인 것으로 수동성, 추위, 어둠, 습기, 부드러움을 뜻하고, 양은 남성적인 것으로 능동성, 더위, 밝음, 건조, 굳음을 뜻한다.
이렇게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힘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발생시키고 변화,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음양에 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4.3세기에 주나라 태사인 백 양보의 지진에 관한 설명이 있었고, 역경에서 우주의 두 가지 힘의 작용이 한쪽이 우세하다고 했다.
이밖에 묵자, 장자 및 도덕경에도 음양에 관한 설명이 있었으며, 음양사상은 상반과 융합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다고 했다.
이런 음양사상은 강유의 이론으로 존래 했으나, 이전부터 역경, 도덕경, 서경의 홍범에 이르게 되었지만, 음양설은 주로 주역에 연관되어 있었다.
오행설의 기원은 서기전 4세기 초로서 최초 언급은 옥 검의 손잡이에 새김 글에서 “오행의 기가 가라 않으면 응축을 발생시킨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외 서경의 홍범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오행에 관하여 첫째 水의 성질은 물체를 젖게 하고 아래로 스며들며, 둘째 火는 위로 타올라 가는 것이며, 셋째 木은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나가기도 하며, 넷째 金은 주형에 따르는 성질이 있고, 다섯째 土는 씨앗을 뿌려 추수를 할 수 있게 하는 성질이 있다.
이와 같이 오행의 개념은 다섯 종류의 기본적 물질이라기보다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 과정을 나타내는 노력의 소산이며, 영원히 순환운동을 행하고 있는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음양오행설이 한국에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이 시기에 전래된 흔적은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는 사신도로서, 현무, 주작, 청룡, 백호의 그림에서 볼 수 있으며, 신라 황룡사 9층 탑의 심초석 아래의 적심석 사이에 청동거울에 사신이 양각되어 있다.
고려시대는 도참사상이 크게 유행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와 묘청의 양경지덕 쇠 왕 설에서 확인된다.
조선시대는 조선건립의 정당화와 천도 문제를 정착시키는데 크게 영향이 미쳤으며, 선조 때 정여립 난 때에 “이 씨는 망하고 정 씨가 일어난다.”는 참설이 유포되었다.
이외 정감록이나 홍경래 난 등 민란봉기의 사상적 원동력은 음양오행설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음양오행설이 성리학의 대표영향은 고전 중에 하나인 태극도설에 나타나고 있으며,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도에 이르면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고 하였다.
즉, 양이 변하고 음이 합치되어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다고 하며, 태극 음양오행의 구도를 정립시켰다.
이와 같이 음양오행의 작용을 세계의 원리로 인식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은 이후 실학자들에게 비판이 되었으나, 조선조 말엽까지 유교적 세계관과 동일시되어 우리 민족의 사상에 큰 영향이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