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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아베 정치적 리더십

아베 정치적 리더십

아베 총리는 1954년 9월 21일 야마구치 현 나가토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전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이며, 친할아버지는 중의원을 했으며,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으로서 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 키이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의 파시즘을 기획한 자로 “만주국 건설”에 개입을 했다.

아베는 1977년 세이케이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1979년에서 1982년까지 철강회사에 근무하다가 외무대신인 아버지 비서관을 시작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은 아베는 1993년 하원인 중의원에 선출되면서,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정치권력의 핵심인 자유민주당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2000년에 관방차관을 하다가 2005년 10월에 고이즈미 내각의 관방장관이 된 후, 2006년 9월 자민당의 52세 나이로 총리가 되면서 같은 해에 양원제 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되었다.

총리가 되면서 정부조직법 개편, 국민투표법제정을 했으나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여 총리 취임 1년 만에 병을 핑계로 퇴진하였으며,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2당으로 밀려났다.

2012년 12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아베는 다시 96대 총리로 제기하면서, 무너져가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아베노믹스(Abenomics) 경제정책으로 일본이 20년 가까이 이어온 디플레이션 엔고를 2~3% 인플레이션 금융완화로 마이너스 정책으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엔화를 많이 풀어 자국의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제품 가격경쟁력으로 경상수지흑자를 보겠다지만, 국제금리 상승과 금리 바닥으로 해외자금 유출 등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아베의 정치적 리더십은 선조들로부터 직접 익혀온 패권지향적인 정치적 리더십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내건 연유는, 총리가 된 후, 일본의 경제 불황과 자민당의 전통적인 지지 계층인 농민정책의 실정으로 총리 1년 만에 그만두자 패배에 대한 굴욕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원자력발전소

2007년 불명예 퇴진했던 아베총리는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자,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겠다며, 전통문화를 존중하겠다며,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제일 먼저 패권 지향적인 리더십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고위 각료들을 대동하여 참배하며 극우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벌인 청일전쟁, 러일전쟁, 민주 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숨진 246만여 명을 신격화시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 되어 있는 장소이다.

아베 정권은 경제적 곤란과 지진으로 원전사고의 방사능 유출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고조될수록 아베의 정치적 리더십은 패권주의적 야망인 팍스 자포니카(Paxjaponica) 평화의 꿈을 꾸었다.

아베 정권하에서는 국내적으로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국의 이익에 전념하는 패권주의적 정책을 펴면서, 한국과는 독도와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었다.

아베 정치적 패권지향적인 리더십은 강한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것으로, 평화헌법 개정의 목적으로 군사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자국의 공격으로 간주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를 실현하겠다고 했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자진사퇴한 연유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공포도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아베 신조 정권의 독주로 검찰청법 개정, 코로나 19 방역 실패로 인한 올림픽 개최 무산 등 언론과 여론의 반발로 정치권력 7년을 넘게 한 총리직을 자진사퇴를 하게 되었다.

일본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