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치적 리더십
미국 제44대 대통령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는 아버지 케냐 출신 흑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시니어(Barack Hussein Obama)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스탠 앤 던함(Stanley Ann Dunham) 사이에 1961년 8월 4일 태어났다.
부모들은 1960년에 결혼하여 1964년에 이혼을 했으나, 어머니는 1967년 인도네시아 출신의 유학생과 결혼을 하였으나, 1980년에 다시 이혼을 했다.
학문적 열정이 강한 어머니는 14년 동안 인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는 끈질긴 노력가 이었다.
오바마는 자신이 혼혈아로 태어난 것을 원망을 하지 않았으나, 유년기 시절에는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였으며, 1971년 오바마가 10살이 되던 해에 명문 사립학교인 푸나호우에 다녔으나, 백인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소외감과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1979년 청년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탈 대학에 들어가면서,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인종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갖겠다는 생각에 흑인 문화를 경험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오바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원천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미국 기업들에게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투자 정치운동을 위한 1분 정도의 대중연설을 할 기회를 가진 때부터 이며, 이때 자신이 활동적인 정치적 리더십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을 했다.
그 후, 컬럼비아대학교 교환학생에서 정치학 공부를 22세까지 한 후에, 30세까지 하바더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 생활을 35세까지 하면서 시카고대학교 헌법학 강의도 했다.
오마바는 아내 미셸 로빈슨 오바마(Michelle Robinson Obama)를 만나 1992년 10월 18일 결혼한 것은, 시카고 시들리 앤 오스턴 법률회사 인턴사원으로 있을 때, 피부색이 같은 동질감과 미녀인 그녀에게 친근감이 들어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오바마가 정치적 입문하게 된 동기는, 1996년 3월 민주당 예비선거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파머 후보자 외 3명이 중복 서명한 유권자, 위조 서명, 자격 없는 유권자 서명,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임장 등을 선거법 위반사항을 들어 경쟁에서 탈락시킴으로써, 민주당 상원의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00년 39세 나이로 연방하원의원 민주당 예비선거 경선에서 일리노이 주 제1 선거구 연방하원 민주당 4선 의원인 보비 러시에게 패배를 맛보았으나, 2004년 11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선거에서 70%의 지지율을 획득하여 43세 나이로 당선되었다.
2007년 오바마는 46세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하면서, “미국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출마선언 의미를 부활시키면서, 강력한 연설로 “링컨은 1858년 노예 반대 연설인 ”분열된 집“을 낭독하면서, 국민의 화합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2008년 11 울 4일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오바마는 47세 나이로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미국의 흑인 지도자로서 세계를 향한 멋진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모든 미국 국민은 자원봉사하는 힘으로 새로운 미국으로 바꾸어야 한다.”라고 했다.
“모든 국민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며, 근면과 정직, 용기와 공정성, 인내와 호기심, 충성과 애국심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자원봉사정신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자발적으로 남을 돕는 인간존중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더욱이 오바마는 시민봉사단(Citizen Crops)을 창설하여 대규모의 봉사단 조직으로 국가의 긴급 재난구호에 전 국민이 자원봉사정신으로 참여하는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2012년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sandy)가 뉴욕 주 등에 강타하자 즉시 중대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지역에 대한 보조금, 긴급 대출 등 연방 재정지출에 대한 조치를 강구했다.
한 치도 알 수 없는 대선의 선거운동을 중단하면서까지, 재난지역 국민들의 고통과 좌절의 늪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주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재선에서 성공을 가져오는 결과를 얻었다.
오마바는 마음속으로 “내가 흑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라고 다짐을 했다.
언제나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취약점을 파악하여 새로운 전환으로 성공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것을 결심을 했다.
오바마의 정신세계는 링컨과 케네디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지배했으며, 흑인에 대한 백인 중심사회에서 국민의 화합과 평등이라는 정치적 신념을 가졌으며, 사회의 급진적 개혁보다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민주적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민주적 화합의 리더십은 공동체적인 가치가 기반을 제공하고 평등주의적인 신념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리더십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주의가 화합된 공동체로서 서로 얽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옷감을 짜는 것이라고 오바마는 믿고 있었다.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이라는 나라는 고정된 계급체계 안에서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근면을 통해서 성공이 가능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들이 성실히 일하여 자신의 꿈을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화합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바마는 지나친 당파성으로 진실된 정치 논의가 부재인 정책결정보다도 정당 간의 협력과 화합, 상대의 옹호로서, 실천에 옮기는 법의 개정과 이슈를 민주적으로 화합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가졌다.
오바마의 민주적인 화합의 리더십은 국경을 초월한 결속 외교에 있어서도 잘 나타나고 있었으며, 북한의 비핵화 정책 강화에 따른 한미동맹의 공고화로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에도 공고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