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대원정에 관하여!
1. 십자군 원정의 발단 원인
십자군 권정은 서유럽의 기독교도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에게서 탈환하기 위해 일으킨 대원정이다.
1096년부터 13세기 후반까지 8회에 걸쳐 약 700만 명을 동원했으며, 십자군에 참가한 기사들의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를 표시했기 때문에 십자군이라고 불렸다.
지중해 세계를 침략한 이슬람 세력은 10세기부터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11세기에는 유럽의 반격을 받아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동방에 새로 등장한 강력한 세력 셀주크튀르크의 확장으로 유럽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봉쇄를 당했다.
셀주크튀르크의 침략을 받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구원 요청을 하게 되었다.
교원 확장의 기회로 생각한 교황은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유럽 각주의 국왕과 제후들에게 거병을 요청한 것이 십자군 원정 발단의 원인이 되었다.
2. 십자군 원정의 성격과 목적
십자군 대원정 성격은 종교적 운동이라기보다는 성지 회복이라는 종교적인 명분 아래 제1차 원정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예루살렘 왕국을 수립했으나 사실상 실패한 것이 되었다.
원정은 8차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적 열정과 목적은 사라지고 상업상의 이익획득이 더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십자군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려는 야망을 갖게 되었으며, 상인들은 경제적 욕망과 농민들은 봉건사회에 벗어나려는 희망 등 잡다한 동기가 신앙적인 정열과 합쳐서 원정에 가담하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 당시의 서유럽은 봉건사회로서,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이루어지게 되자, 노르만족의 남부 이탈리아 및 시칠리아 정복과 에스파냐의 국토 회복 등 영토확장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 십자군은 식민주의적 운동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종교는 이러한 운동의 명분을 제공하는 역할수행을 했다.
이때 십자군의 탈선은 아드리아 해안의 기독교 도시를 헝가리로부터 빼앗으며, 1204년 라틴 제국을 세워서 이를 통해서 베네치아 상인은 제노바 상인을 콘스탄티노플에서 추방하고, 비잔틴 상인을 물리치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은 동방지역과의 교역과 유럽 내부의 상업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십자군은 동방의 대도시를 점령, 파괴, 약탈함으로써, 아라비아권 도시의 쇠퇴를 초래한, 반면에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서유럽은 금은 등의 재화와 보물을 획득함으로써, 부를 직접적으로 접했다.
3. 십자군 원정의 유럽 영향
베네치아는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최대의 상업 도시가 되었으며, 원정 비용 지불과 동방무역의 발전에 따른 화폐 수요 증대로 화폐 유통을 촉진해서 화폐경제의 발달을 가져왔다.
동방무역의 융성과 그에 따른 동방 재화의 보급 및 수요 증대와 새로운 동방의 풍속, 관습, 지식의 수입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십자군 원정은 유럽의 절대주의 왕권이 등장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식민지 약탈을 통해 유럽이 평창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시흥 상공업 계층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막대한 부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인쇄술 발달과 함께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 지식의 대중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