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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식

세계 대공황과 뉴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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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과 뉴딜정책

 

1. 세계 대공황

 

세계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하여 유럽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대공황의 직접적인 계기는 1929 10 24일 뉴욕 주식거래소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으로 인하여 1933년 말까지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 확산이 되어 1939년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대공황의 영향으로 주가 대폭락은 경제 각 부문에 급속도로 파급되어, 경제활동을 마비시켜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늘어났으며, 미국이 유럽에 대부했던 자금회수가 시작되자 공항은 순식간에 유럽 국가들로 확산이 되었다.

금융 부분에서 1931년 오스트리아의 은행 도산 계기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자, 달러 공급에 의존하고 있던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국제 금본위제를 붕괴시켰다.

 

1933 2월에 대규모의 금융공황이 미국 경제를 강타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33 4월 은행을 휴업시키고, 태환 정지와 금의 수출금지를 단행해 금본위제를 정지시켰다.

이러한 세계공황은 미국 경제가 이룩한 번영과 급속한 생산력으로 인한 과잉 생산 및 불안정한 세계 경제구조가 가져온 결과였으며, 오랜 기간에 진행되었다.

 

2. 뉴딜정책

 

1933년 금융공황의 와중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경제 사회의 재건, 빈궁과 불안해하는 국민의 구제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 뉴딜 정책이다.

그는 새로운 뉴딜정책을 약속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어 100일 의회라고 하는 특별의회를 소집해서, 특별회기 내에 적극적인 불황 대책을 정부 제안의 중요법안으로 입법화했다.

뉴딜정책의 제1기는 1933년부터 1955년 중반까지 정부의 물가 안정과 농업 조정에 주력했다.

그의 주요한 정책은 전국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 등이 대표적이며, 이 법들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1936년 대통령으로 재선 되어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진보의 기준이다.”라고 주장해 뉴딜 정책의 방향 전환을 밝혔다.

뉴딜정책의 제2기는 1935년 후반부터 1937년까지이며, 이 시기는 유수 정책으로서, 다액의 적자 공채를 발행해 유휴 자금을 흡수하고 이것으로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벌이면서, 산업 투자에 자극하여 전반적인 경기를 회복시켜 고용을 증대시켰다.

1933 5월 테네시 계곡 개발공사법에 의한 설비건설과 관련된 산업에 파급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경제의 정기적인 변화에 민간투자의 부족을 보완하는 보정적 재정정책으로 전환하여 근로사업청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고용을 알선했다.

1939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준전시 체제가 되면서 군비 생산에 돌입하자 뉴딜의 공공 지출보다 훨씬 많은 군사비가 지출되었다.

뉴딜정책은 경기 회복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전시체제로 접어들면서 자연히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