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의 성립 과정
세계 제1차 대저니 남긴 중요한 결과의 하나인 것은, 러시아의 혁명으로서, 근대화의 시작 시기는 1890년에서 1913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의 인구는4분의 3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으며, 공업인구는 10퍼센트 미만이었으나, 1906년 농노해방이 있기까지는 러시아는 본격적인 근대적 임금 노동자층이 출현하지 않았다.
러시아 근대화의 제약요인은 장기간에 걸친 가혹한 재판 농노제였으나, 크리미아 전쟁에 패배한 제정 러시아는 위로부터 농노해방을 추진해서 1861년 농노해방령을 공포했으며, 이 법에 따라 약 200만 명의 농노가 신분적으로 해방이 되었다.
러시아의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농노해방이 이루어진 것은,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뒤 1906년 스톨리핀이 헌정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면서부터이었다.
1914년 러시아의 세계 제1차 대전1 참전은 후진적인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한계를 노출시켰으며, 기계공업과 운송 부문의 기반이 약해서 전쟁으로 대외 교역이 중단되자 전쟁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전쟁 수행 능력이 마비되어 중공업과 군수공업을 제외한 모든 부문의 생산은 극도로 부진했다.
1916년 겨울 도시 중심으로 식량난은 일반대중의 불만을 폭발시켜 2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1917년에 1,330건의 파업이 발생했고, 2월 중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부족으로 배급제를 실시했다.
이러한 배급제 실시에 의한 부작용으로 시민들의 시위를 강제 진압에 군부마저 반란을 일으켜 시위대에 가담하자,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신내각을 구성했다.
새로운 구성한 케렌스키 정부는 혁명적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이 되지 못하고 경제의 혼란만 가중되자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를 구성해 자주 관리를 시작하면서 지주제 철폐와 토지개혁을 요구했다.
1917년 10월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도하는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볼세비키 정부의 주도 아래 소비에트 러시아는 모든 생산을 노동자의 관리 아래 두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 나갔다.
혁명정부는 농민의 자주적인 토지 분배를 승인하고 은행을 국유화 했으며,, 수상 운송, 상업, 주요 기업과 시설, 외국 무역에 대한 국가 독점 등 모든 경제 분야에 대한 국유화했으며, 모든 외채 계약을 파기했다.
사회주의 경제가 쉽게 확립되지 않고 격심한 사회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자 외국 자본을 국유화하고 모든 외채 계약을 무효화 하자 러시아에 자본을 투자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이 반발과 내전이 확대되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난국 타개를 위해 전시 공산주의 체제라는 비상 수단을 써서 중소기업을 국유화하고 농민에게 강제로 곡물을 매입하여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다.
1920년 후반부터 농민폭동과 노동자의 파업이 빈발했으며, 1921년에 군대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소비에트 정부는 전시 공산주의 제도를 종결하고 신경제정책을 실시했다.
신경제정책의 농업 부문에서 할당 징발제를 폐지하고 현물의 식량 세를 도입하여 농민은 잉여 자유 처분을 인정했다.
1924년 통화개혁이 완수되었으며, 루불화의 금 및 외화의 태환 가능성도 화폐가치의 안정에 도움을 주게 했다.
공업조직도 재편성되어 농촌의 공업과 소규모 사영 공업에도 국유화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국가가 소유한 다수의 중소기업은 협동조합과 개인에게 임대했다.
신경제정책에 따른 생산 회복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입장에서 과도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1928년부터 시작한 5개년 계획의 농업 집단화는 개인 상인을 배제하고 공업생산을 계획하면서 공산주의 경제 체제의 기반을 강화했다.
1933년 제1차 5개년 계획이 끝난 후에는 농업과 공업의 사회주의화가 달성되어 러시아는 공업국으로 전화되고 사회주의 경제 체제도 확립되었다.
1934년 제2차 5개년 계획의 개정안이 채택된 이후 계획경제의 생산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면서 통제 기능도 전문화와 효율화가 되었다.
계획경제에 따라 경제력이나 정치력,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루에는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