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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밀(Mill)의 자유론

밀(Mill)의 자유론

밀(Mill)은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리주의 학파를 이어갈 기대 속에서, 35년간을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다가, 1823년 공리주의자협회를 창설하였다.

그는 1843년에 “논리학 체계”를 발표하면서, 학문 활동을 하다가 1873년 아비뇽에서 사망하였으며, 저서로는 “여성의 종속”, “정치경제학 원리”, “종교에 관하여” 등이 있다.

그는 “자유론”에서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한 사람을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하였다.

그의 자유론은 유일한 진리에 관한 일종의 철학교과서이었으며, 여기서 언론의 자유에 관하여 열렬히 옹호하였으며, 사람들이 언론에 기고하는 사상이나 연설과 저술에서 폭력을 조장할 위험성이 명백할 경우에만 검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언론인 신문에 기고하면서, 군중들을 선동하는 내용은 폭등을 야기할 위험성이 크다면,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일반적인 견해를 기고한 것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 도덕, 정책들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는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야기되는 손실보다 그 견해를 억압함으로써, 야기되는 손실이 더 크다고 하였다.

즉, 언론에 기고하는 견해가 참인데 불구하고 억압하는 것은, 사람들이 오류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므로 언제나 진리는 거짓보다 낫다고 하였다.

만약, 그 견해가 거짓이라면, 그것을 듣지 않고 침묵시키는 것은, 그 견해를 논박될 가능성을 차단하므로 진리로 입증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밀과 연인

예를 들면, 인간은 진리에 관해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역사에서 보듯이, 억압된 견해가 날조된 거짓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리가 억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비판을 받지 않는 견해보다는 감시와 비판을 거친 견해에 관해 더 큰 확신을 가진다고 하였다.

또한, 비록 어떤 견해가 명백한 사실이라도, 거짓 견해들에 대해 그 견해를 방어하는 행위는 그 견해가 계속 생존하도록 지켜주며, 죽지 않게 막아준다고 하였다.

그의 자유론에 대한 비판은, 종교적 관용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자유에 관한 견해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자유론에서 핵심 주제인 “상해”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상해 원리에 대한 결론적 주장으로서의 기획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유론에서 이론적 정당성을 탁월한 방식으로 제시하지만, 그는 자유가 공공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과 무관하게 내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자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직접적인 상해가 발생할 심각한 위험이 없다는 것을 공리주의가 원론적으로 정당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와 그 결과에 대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진리와 오류가 충돌할 때,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비합리성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밀의 자유론

자유론에서 그는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에 집중하고 관용을 주장함으로써, 자유란 개념이 가지는 것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를 중요시 하지만, 사람들은 목표를 지향하는 적극적 자유를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