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소외 사상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가장 심오한 철학적 진지함을 가장 날카로운 위트와 결합을 했다.
그는 라인 신문 편집인으로서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운동 조직체와 접촉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했다.
그는 1848년 공산주의자 연맹의 요청으로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였으나, 재정적으로 뒷받침을 해준 엥겔스가 조금은 수정을 했다.
이 둘의 선언은 정치적 효력은 없었지만, 나중에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정당의 강령의 초석이 되었다.
그는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제3권의 주저인 “자본”을 썼으나, 제2권과 제3권은 엥겔스가 후기를 추가해서 나중에 출간을 했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가 사망하자, 엥겔스는 “임노동계급을 근대 자본주의의 생산체계로부터 해방하려는 투쟁이 그의 참된 소명이었으며, 그 보다 더 활동적인 전사는 없었다.”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입장에서 기획된 국가 경제가 어떻게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지를 제시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빈곤, 나아가 궁핍으로 끝나게 되는 것은, 이윤 상승을 목표로 하는 자본의 매각은 거대 자본을 이롭게 하는 데는, 거대 자본이 소자본을 파괴하고 기본 소유(토지)를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다른 한편 잉여노동을 통해 노동임금을 최소한의 생존 아래로 떨어뜨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절대적 빈곤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만 노동 임금이 자본 소유자의 부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한 데서 오는 빈부격차가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국가 경제 비판을 인간과 노동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을 확장시킨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서 같은 인간이 자신의 본질에 낯설게 되는 “소외”인 것이라 했다.
그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생산수단인 사적 소유는, 노동 생산으로부터의 소외, 노동의 본성으로부터의 소외, 노동하는 자로서 자신으로부터 소외, 그리고 사회적으로부터의 소외라고 했다.
이러한 연유는 그는 노동자는 자본가와 전혀 다른 형식으로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상품을 스스로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동자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명활동으로부터 소외 되는 것은, 노동은 본질상 강제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인간은 유적 존재에서 소외되는 것은, 유의 활동에서 가공된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인간은 자기의 동료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나아가 오직 노동자로서 개인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써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헤겔은 노동의 세계가 시민사회까지 확대되어 노동자의 상황이 개선된다면, 노동의 세계는 소외라는 부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구조적 이윤도 자유에의 본질적 기여도 지각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수용하면서, 노동에 종속된 왕국과 노동을 벗어난 자유의 왕국을 분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