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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김유신 장군의 생애와 설화

김유신 장군의 생애와 설화

1. 생애

 

김유신은 595~673(진평왕 17~문무왕 13)년 신라 삼국통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장군이며 대신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532(법흥왕19)년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구 해왕이며, 할아버지는 무력, 아버지는 서현이었다.

어머니는 만명이며, 증조부는 지증왕,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 아버지는 숙흘종이었다.

김유신은 595년에 출생을 하여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로 불리며 그는 낭도를 이끌었다.

그는 629년 34살에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하여 실패를 하였으나, 중당당주로 출전하여 단신으로 적진을 공격하여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워 크게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다.

김유신 장군

그는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려 간 642(선덕왕11)년에 앞서 고구려와 교선 과정에서 일어날 위험에 대해 서로 상의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건 맹세를 했다.

그는 642년 압량주(경북 경산)의 군주가 되면서 군사의 중요 직책을 맡았으며, 그 후, 상장군으로 백제 원정의 최고 지휘관이 되어 전략상의 요충지인 가혜성, 성열성, 동화성 등 7 개성을 점령했다.

647년 귀족 내부에서 여왕은 정치를 잘 할 수 없다고 반란을 일으킨 귀족회의 의장인 상대등 비담을 진압했다.

647년 진덕왕 때에 백제의 대대적인 침입을 막기 위해 중앙군의 편성된 군단의 대장군으로 지휘를 했다.

그의 누이동생이 김춘추인 태종무열왕의 비가 되었으며, 그와 김춘추와의 유대관계가 대단히 깊어서 김춘추가 왕이 되는데 그의 지지 세력으로 영향이 미치게 했다.

 

그 후, 그는 대각간이 되어 태종 무열왕의 셋째 딸 지소와 혼인을 함으로써, 가야 출신으로서 제약에 벗어날 수 있는 왕실과의 통혼이 된 것이었다.

660년 정월에 귀족회의 수뇌인 상대등이 되었으며, 삼국통일 전쟁과정에서 신라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668년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이 되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을 시켰다.

고구려를 평정한 직 후에 나이가 많아지자 군사적 일을 직접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국가의 원로로서 고문과 지도적 역할을 했다.

김유신은 문무왕 13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금산원(경주시 송화산)에 장사를 지내고 비에 공적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다.

 

2. 김유신 장군의 설화

 

김유신 장군의 설화는 삼국사기 열전의 내용인 고대 신화로부터 이어져 오는 영웅의 일생을 수용하여 일대기 형식으로 갖추었다.

김유신 아버지 김서현은 아들을 놓기 전에 두 개의 별이 내려오는 꿈을 꾸었으며, 어머니만 명은 금빛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탄 동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어 잉태한 후에 20개월 만에 김유신을 낳았다고 한다.

김유신 17세에 의적을 물리칠 뜻을 품고 중악 석굴에 들어가 빌고 있는데, 산신이 나타나 방술을 전해주고 오색찬란한 빛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18세에 열박산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기도하니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어 칼이 스스로 움직였다고 한다.

왕족 내부에서 비단, 염종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큰 별이 떨어져 신라왕이 떨어질 징조라고 하자, 그는 허수아비를 태워버려 하늘로 올리자, 떨어진 별이 도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어 난을 평정했다고 한다.

고구려와 말갈이 북한산성을 포위 하자, 그는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리니 하늘에서 큰 별과 뇌성벽력이 떨어져 그에 놀란 적군이 물러났다고 한다.

경주 김유신장군 동상

그는 문무왕 때 태대각간이라는 최고 직으로 있을 때에 요성이 나타나 지진을 일으키고, 군복을 입고 병기를 가진 수십 명의 군사가 김유신의 집에서 울면서 나가더라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예언을 했다.

그가 사망을 하자 묘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티끌이 일어나며 울면서 한탄한 소리가 나자 혜공왕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